[취재수첩] 순서 뒤바뀐 에너지 정책
정부가 추진 중인 ‘신재생 3020’ 달성을 위해 최소 80조원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있다. 한국수력원자력과 남동·중부·서부·남부·동서발전 등 6개 발전 공기업이 윤한홍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서 밝힌 내용이다. 신재생 3020이란 현재 7%(자가용 발전 포함)인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20%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언론에서 이 같은 내용을 보도하자 산업통상자원부는 “6개 발전사가 2030년까지 건설해야 할 신재생 설비량은 확정되지 않았다”며 “발전 공기업들이 부담하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고 대부분 민간 투자가 중심이 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신재생 3020 달성을 위해 필요한 금액은 얼마이고 민간에서 얼마나 투자받을 수 있을지 산업부에 물었다. 산업부 관계자는 “알 수 없다”고 답했다. 산업부는 내달 말 8차 전력수급계획 발표에 맞춰 신재생 3020 이행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거기에도 공공기관과 민간이 얼마씩 투자해야 하는지 구체적 액수는 담기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산업부 관계자는 설명했다.

국가 에너지 정책의 큰 틀을 바꾸는 대책을 내놓는데 구체적 비용 추계를 하지 않는 걸 납득할 국민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투자금 대부분을 민간에서 조달하겠다는 산업부 설명도 ‘장밋빛 전망’이 될 수 있다.

신재생 3020이 ‘준비 안 된 정책’으로 비치는 이유는 탈(脫)원전 정책과 선후관계가 바뀌어서다. 신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을 먼저 따져본 뒤 그 방향이 맞다고 판단되면 탈원전으로 가는 게 올바른 순서다. 하지만 정부는 원전을 없애겠다는 목표를 먼저 정한 뒤 탈원전에 따른 전력 부족분을 경제성이 입증되지도 않은 신재생에너지로 메운다는 식으로 가고 있다.

정부가 민간으로부터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기대한 만큼 받지 못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공기업 몫이 된다. 6개 발전사의 모기업인 한국전력은 부채가 107조원(6월 말 연결재무제표 기준)이 넘는다. 한전은 국내 유일의 전력 판매사이자 최대 공기업이다. 한전이 부실에 빠지면 얼마나 많은 국민 혈세가 투입돼야 하는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이태훈 경제부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