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선거 치른 국가들의 투표행태 분석

오스트리아·뉴질랜드·프랑스 국민 30대 지도자 선출
과거와 단절, 선명한 공약, 강력한 리더십이 먹혀들어
극우민족주의로 치달을 위험성도 항상 잠복하고 있어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뉴스의 맥] 글로벌 표심, 경제성과보다 미래 비전을 택했다

체코 네덜란드 뉴질랜드 오스트리아 등이 최근 선거를 치렀다. 이들 국가에선 의외로 비주류 정치인과 젊은 리더가 총리로 당선됐다. 올해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진행된 세계 정치 질서의 재편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뉴질랜드를 제외하고는 우파 정권이 들어선 것도 특색이다. 프랑스에서도 지난 4월 개혁을 전면에 내세운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프랑스는 이후 노동개혁 세제개혁 등 전면적인 국가 개혁을 진행 중이다. 최근 치러진 글로벌 선거들에서 드러난 행태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지난 22일 치러진 체코 총선에선 안드레이 바비스 체코 아노당(ANO·긍정당) 대표가 총리직을 거머쥐었다. 동시에 치러진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대승한 아베 신조 총리와 바비스 총리는 태어난 해와 달이 1954년 9월로 같다. 아베 총리는 전형적인 정치가의 길을 걸어왔지만 바비스는 기업인으로 성공했다.
[뉴스의 맥] 글로벌 표심, 경제성과보다 미래 비전을 택했다

하지만 바비스는 주류 정치인을 제치고 신생정당 아노당의 승리를 이끌었다. 바비스만이 아니다. 올해 선거에서 승리한 지도자 가운데 비정치인들이 눈에 띈다. 지난 3월 네덜란드 총선에서 승리한 마르크 뤼터 총리도 유니레버 인사담당 직원과 임원을 지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또한 정치인 출신이 아니다.

이런 비주류 정치인보다 더욱 주목되는 건 젊은 정치인들의 등장이다. 프랑스 대선과 총선을 승리로 이끈 마크롱은 39세다. 지난 16일 치러된 오스트리아 총선에서 의회를 장악한 제바스티안 쿠르츠 총리 내정자는 마크롱보다 여덟 살 아래인 31세다. 23일 치러진 뉴질랜드 총선에서 총리로 선출된 재신더 아던 노동당 대표 또한 37세다. 벨기에에선 2014년 샤를 미셸이 38세에 총리가 됐고, 라타스 위리 에스토니아 총리와 블라디미르 그로이스만 우크라이나 총리도 지난해 나란히 38세에 총리 자리에 올랐다.

비주류·젊은 정치인 주목

비주류 정치인과 젊은 정치인들에게 유권자들의 표심이 움직이고 있는 건 최근 주목되는 현상이다. 21세기 새로운 정치 지형의 구현이라는 평가도 있다. 무엇보다 이들이 내세우는 개혁과 혁신, 21세기 국가 비전에 유권자들은 매혹된다. 쿠르츠 총리 내정자는 후보 시절 “단지 선거 승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스트리아를 최강국으로 만들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주장했다. 마크롱 대통령도 후보 시절 줄곧 희망과 미래를 얘기하고 ‘위대한 프랑스’를 주창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인 ‘미국 우선주의’도 이런 맥락이다.

이를 두고 정치학에선 ‘회고적 투표(retrospective voting)’가 아니라 ‘전망적 투표(prospective voting)’ 성향으로 유권자들의 표심이 옮겨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유권자들은 일반적으로 현 정권의 업적을 평가하고 그 평가에 근거해 투표하든지 아니면 후보자들이 내세우는 미래의 공약에 대한 기대에 따라 투표한다. 전자를 회고적 투표라 하고, 후자를 전망적 투표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회고적 투표와 전망적 투표를 나누는 기준은 경제적 기준이다. 후자(전망적 투표)는 개인의 경제 상황보다 국가 전체의 경제 상황이 더욱 중시된다.

물론 이 둘을 완전히 떼어놓을 수는 없지만 지금 유권자들은 이전의 정치가와 단절하고 선명한 공약과 강력한 리더십으로 21세기를 꾸려간다는 후보에 방점을 찍고 있다. 미국과 EU 경기는 지속 회복되고 있다. EU 전체 실업률도 2008년 12월 이후 최저치다. 하지만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한 평가와 후보 선택 시 상관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제조업 고용 감소의 두려움 존재

정작 이들이 젊은 비주류 정치인에게 기대하는 건 장기적인 불안과도 맥이 닿아 있다. 특히 각국에서 줄어들고 있는 제조업 고용 비중은 불안을 가속시킨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고용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985년 21.7%에서 2014년 16.5%로 떨어졌다. 특히 젊은 정치인이나 비주류 정치인을 받아들인 국가에서 제조업 고용 비중 하락폭이 컸다. 뉴질랜드는 이 기간 절반이나 하락했으며 네덜란드 또한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프랑스도 3분의 1이나 하락했다. 제조업 고용이 줄어든 만큼 서비스업이 늘어났지만 업(業)의 속성상 안정적 일자리를 제공해주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자동화나 난민 급증에 따른 제조업 일자리 감소도 두려움의 요인이 되고 있다.

이들 유권자는 따라서 당장 현재의 복지정책 등 이전 정권의 성과를 평가하기보다 아예 과거와 단절하고 미래에 대한 강한 비전을 제공하는 후보자들에게 표를 찍고 있다. 개인 비리 의혹에 시달린 아베 총리를 신뢰하지 않지만 국가의 비전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자민당을 찍은 일본 유권자들의 표심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결국 제조업이 가져오는 경제적 불안감을 해소하는 후보에 유권자들의 마음이 돌리고 있다는 추론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문제는 이들 정치가가 대부분 연정 구성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은 물론 체코나 오스트리아 등도 연정 구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뉴질랜드는 선거에서 1당에 오른 정당이 연정 구성으로 인해 오히려 두 번째 정당에 총리 자리를 내줬다. 지난 3월15일 총선을 치른 네덜란드는 지난 10일 연정 구성을 마무리 지었다. 총선 이후 208일 만에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가 끝났다. 연립정부는 의견이 맞지 않을 때 의안이나 법안을 강력하게 추진하지 못한다. 미래에 승부를 낼 결정을 섣부르게 하지 못한다.

연정 등 기존 정치 체제는 지속

신생 정당 등의 문제도 심각하다. 마크롱이 레퓌블리크 앙마르슈(공화국전진)당을 만들고 바비스가 아노당을 만들었지만 이 같은 정당의 영속성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앙마르슈와 같은 정당이 1900년 이후 프랑스에서 14개나 나타났지만 현재 남아 있는 정당은 3개뿐이다. 평균 34년의 역사만 가지고 있다. 결국 정치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고 천국행 티켓은 없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독일의 극우정당인 AfD(독일인을 위한 대안)정당 등이 고개를 들고 있다. 체코의 아노당이나 오스트리아 국민당도 우파 민족주의 색채를 띠고 있다. 전망적 투표의 함정이 고스란히 표출되고 있다. 새로운 파시즘이 출현하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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