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혁신성장의 핵심방안은 산업융합이다
정부가 혁신성장 정책을 본격화하고 있다.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올리고 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여 지속성장과 공정배분의 밑바탕을 튼튼히 하려는 것이다. 혁신성장 전략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려면 무엇보다 개념 논쟁 수렁에 빠져 정책 추진의 동력을 잃어서는 안 된다.

혁신성장은 이전에 없던 용어나 개념이 아니다. 경제이론 측면에서 보면 이미 오래전에 ‘슘페터 혁신론’이 이를 주창했다. 신고전파 성장론에서도 기술과 제도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1990년대에 등장한 신경제론에서는 혁신을 통해 성장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논거를 정립했다. 정부 차원에서도 혁신을 강조하지 않은 때는 없다. 혁신의 사전적 의미인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꿔서 새롭게 하는 것’ 없이는 어느 시대건 새로운 성장은 불가능한 까닭이다.

혁신성장을 추진하는 데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국내 산업을 둘러싼 대내외 여건 변화에 적합한 구체적 실현 방안을 찾는 것이다. 혁신의 근본 의미는 동서고금 늘 동일하겠지만 실천 방안은 경제 환경 변화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할 수 있는 혁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는 바로 산업 융합이다.

새로운 산업혁명을 이끌고 있는 파괴적 신기술들인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의 특성은 경제 부문 간 연결성과 산업활동의 지능성을 고도로 높이는 데 있다. 앞으로 갈수록 글로벌 전자상거래, 핀테크(금융기술), 원격진료, 자율주행자동차 등과 같이 실물과 가상공간의 결합, 금융·의료 등 서비스업과 정보통신의 연계, 제조업과 인공지능의 합체 등으로 경제활동의 경계와 산업별 고유 영역이 붕괴될 것이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실시간으로 연결되고 산업과 산업의 결합으로 탄생하는 것이 4차 산업혁명 시대 융합경제다. 이미 생산과 유통, 제조와 서비스업 간 융합체제를 구축한 아마존, 구글, GE 등이 세계 최고의 기업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다행히 한국도 ‘산업융합발전 기본계획’ 등을 통해 산업 융합 정책을 추진해왔다. 아직까지 융합 분야별 정책 여건상 한계로 산업 융합화는 요원한 상태다. 먼저 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 등을 결합해 신제품을 창출하는 제조업 융합의 경우는 생산시험장(test bed) 부족 문제가 크다. 새만금과 같은 특정 지역에 전 세계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는 거대한 신제품 시험장을 만들 필요가 있다.

한국이 내수 확대를 위해 가장 힘써야 할 서비스업과 신기술을 합치는 서비스업 융합 분야는 아예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과도한 진입 규제와 함께 금융, 의료, 관광, 공유경제 등 주요 서비스업 부문에서 신사업에 따르는 위험과 기득권층 반발을 최대한 회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산업별 융합의 가장 성숙한 단계이고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이 매우 클 것으로 예견되는 분야가 제조업과 서비스업 융합이다. 선진 제조강국들은 제조 과정에 빅데이터를 활용한 연구개발 서비스를 결합하고 제품 판매에 금융, 사후관리 서비스를 연계하고 있다. 한국의 제조-서비스업 융합 수준은 미국과 같은 선진국은 물론이고 중국에도 뒤지는 초보단계에 머물러 있다. 전문인력이 부족하고 각종 빅데이터 활용에 제약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산업 융합은 궁극적으로 생산과 소비, 제조와 유통, 신사업 개발까지 하나의 인터넷 기반에서 통합 관리하는 플랫폼 기업으로 연결된다. 이의 대표적인 것이 산업인터넷 컨소시엄을 구성한 미국 세계 최대 제조업체인 GE다. 온라인 서적 유통기업이었던 아마존은 전 세계 최대 유통 플랫폼을 구성하고 물류 사업까지 진출하며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업을 통합하고 있다. 플랫폼기업이 급속히 성장하는 산업 융합 경제에서는 승자독식 원리가 적용된다. 경쟁력을 지닌 선발주자가 모든 세계 수요와 이익을 독점하는 것이다. 한국 경제의 지속성장을 위한 혁신성장 전략은 산업 융합을 여하히 꽃 피우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

유병규 < 산업연구원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