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영 칼럼] '델로스의 지혜' 활용해 세제 개편해야
델로스 섬은 그리스가 자랑하는 인류 최고(最古)의 문화유산이다. 태양의 신 아폴론이 탄생한 성지이자 기원전 3000년까지 올라가는 고대 그리스 문명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아직도 발굴 중인 방대한 문화유적은 아폴론 신앙뿐만 아니라 무역과 금융, 해상 동맹의 중심지로서 융성했던 고대 에게문명의 화려함을 그대로 증언하고 있다.

3.5㎢에 불과한 에게해의 작은 섬이 지중해의 중심이 됐던 중요한 요인의 하나는 놀랍게도 세금이었다고 한다. BC(기원전) 166년 당시 델로스를 지배했던 로마는 자신에게 적대적인 동쪽의 도시국가 로도스 섬에 타격을 주기 위해 세금이 전혀 없는 델로스 자유무역항을 선포했다. 이 조치로 델로스는 지중해 무역의 중심으로 전성기를 구가했고 로도스는 결국 침체되고 말았다. 델로스는 아마도 세계 최초의 자유무역항이었고 전략적인 세금으로 번영을 이룬 첫 사례가 된 셈이다.

2000여 년 전 두 도시국가의 운명을 가른 조세정책이 21세기에 재연되고 있다. 미국이 법인세를 35%에서 20%로 인하하고, 홍콩도 16.5%에서 10%로 경감하는 등 세계 각국이 치열한 세금 인하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글로벌 경쟁에서 누군가는 기업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로도스와 같은 위기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조세는 당연히 생산적인 활동은 장려하고 비생산적 부문은 억제해야 한다. 예를 들어 법인세나 근로소득세, 연구개발(R&D) 관련 세금 등은 가급적 낮게 유지하고 비생산적인 부동산 부문 등은 강화해야 한다. 물론 소득 재분배를 위해 불가피하게 대기업과 고소득자에게 누진제를 적용하거나 부족한 자원의 남용과 바람직하지 않은 경제활동에는 징벌적인 과세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치이념이나 행정편의 중심으로 집행되거나 사회여론에 밀리고 각종 감면과 예외 조항으로 복잡하고 난해하기 때문에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라서 4차 산업혁명 등의 시대 변화를 수용하고 왕성한 경제활동을 유도할 수 있는 세제의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정치이념이나 사회여론, 포퓰리즘을 극복하고 성장과 혁신을 증진하는 세제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 소득재분배를 위한 보완도 이런 토대 위에서 마련돼야 한다. 성장이 이뤄져야 분배와 복지, 소득주도 성장도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논의되고 있는 한국의 세제개편은 법인세를 인상하는 등 오히려 글로벌 추세와는 역행하고 있다. 생산 활동의 과실인 근로소득도 마찬가지다. 납세자연맹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근로자의 연봉은 21% 증가했지만 근로소득세는 75%나 늘어났다고 한다. 과세표준이 물가에 연동되지 않은 명목임금 기준이고 누진이 강화된 것이 주원인으로 지적된다. 부자증세도 필요하지만 유리지갑의 소득세는 복잡한 감면제도를 줄이고 세율도 단순화해야 하며 선진국처럼 물가연동세제가 도입돼야 한다.

반면 부족한 세입은 오히려 비생산적인 부동산 부문에서 찾아야 한다. 세수도 늘리고 투기도 억제하려면 불필요한 부동산 소유를 부담스럽게 만들어야 한다. 보유비용은 적은데, 기대수익이 크다면 누군들 부동산에 투자하지 않겠는가. 다주택자를 비난하기에 앞서 암묵적으로 투기를 유도하는 왜곡된 조세정책을 탓해야 한다. 특히 주택은 일정 기준을 벗어나면 재산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대폭 높여서 수요를 억제하는 세제개편이 이뤄져야 한다. 현행 양도세는 거래 활성화만 제약할 뿐 투기억제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따라서 보유비용은 높이고 거래비용은 낮춰서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하고 대신 자금이 생산적 부문으로 유입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조세개혁은 항상 정치이념과 이해관계가 얽혀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 정답을 찾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럴수록 기본으로 돌아가 ‘델로스의 지혜’를 활용해야 한다. 바람직한 경제활동은 장려하고 비생산적 부문은 세금 부담을 높여야 한다. 재산세는 부담스럽지 않고 법인세가 오히려 선진국보다 훨씬 높은 세제를 지향한다면 어떻게 우리가 ‘로도스의 저주’를 피할 수 있겠는가.

정갑영 < FROM100 대표, 전 연세대 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