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의 데스크 시각] 주식시장과 북핵, 정책 리스크
최근 만난 국내 증권·자산운용회사 최고경영자(CEO)들과 한국에 있는 외국계 금융회사 대표들이 ‘한반도 내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사뭇 달랐다. 국내 업체 CEO들은 대체로 “가능성이 낮다”는 쪽이었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한 외국계 법인 대표들과 온도차가 컸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외국계 법인 대표들이 예상하는 시나리오가 북한의 공격이 아니라 미국의 대북 선제 타격 가능성이었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참모들이 간간이 언급하는 ‘군사적 옵션’의 실행이다.

외국인 동향 주시해야

지금은 다소 진정됐지만 외국인은 추석 연휴 직전까지만 해도 ‘셀 코리아’에 나서는 분위기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주식·채권시장에서 외국인 자금은 지난 8월(32억5000만달러)과 9월(43억달러) 두 달 연속 순유출됐다.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한반도 긴장이 높아지면 한국 투자에 대한 헤지(위험회피)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어 투자를 꺼린다”고 말했다.

잠시 수면 아래 가라앉았을 뿐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증권업계에서는 “국가부도 위험을 보여주는 한국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높을수록 부도 위험이 큼)이 여전히 높아 외국인 자금 유출에 대해 안심할 수 없다”(한화증권)는 목소리가 나온다. CDS 프리미엄은 올초 40bp(1bp=0.01%포인트)였지만 지난달 27일에는 76bp까지 올랐고, 여전히 70bp 안팎으로 높다. 한국과 신용등급(무디스 기준 Aa2)이 같은 국가들의 CDS 프리미엄을 보면 홍콩이 30bp 초반, 영국과 프랑스는 20bp 초반이다.

북핵 외에 외국인이 불안해하는 또 하나의 이유로 ‘정책 리스크’가 꼽힌다. 법인세 인상 추진과 내년 최저임금 인상 결정 외에 각종 기업 규제로 기업 실적이 줄고 배당여력이 낮아지면 주가도 발목이 잡힐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원자력발전소 관련주(원전주)가 대표적인 사례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중단 논의가 시작된 6월부터 두산중공업 한국전력 등 관련주가 약세를 보였다. 지난 20일 공론화위원회의 공사 재개 권고에도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탈원전 정책 기조는 ‘그대로’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정책 리스크

통신주(통신비 인하 정책)와 건설주(부동산 규제), 은행주(대출 규제)도 마찬가지다. 각종 규제로 국내 주식시장에서 증발한 시가총액만 어림잡아 20조원가량에 달하는 것으로 증권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올라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빼면 코스피지수가 2000선을 밑도는 게 현실이다. 올 들어 코스피지수와 일부 종목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오른 곳보다 떨어진 종목이 더 많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초부터 지난 11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46.1%(393개), 코스닥에서는 33.1%(388개)의 종목만 상승했다. 최근 두 달간 코스닥 시가총액 증가분의 90%는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 두 곳의 몫이었다. ‘착시현상’을 경계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한 외국계 증권사 한국지점 대표는 “각종 규제가 한국 대표기업들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을 약화시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며 “요즘 같아선 한국에 투자하라고 권유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북핵 문제는 우리 정부의 노력과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지만 정책 방향은 얼마든지 조정해나갈 수 있다. 외국인 눈에서 보면 북핵 위험도, 기업을 옥죄는 규제도 똑같은 ‘컨트리 리스크(국가 위험)’이자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저평가)’ 요인이다.

이건호 증권부장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