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정치신인 돌풍, 한국선 왜 안 될까
그럴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하다. 유럽의 젊은 지도자 붐에 대한 정치권의 무관심 말이다. 지난 15일 오스트리아 총선에서 만 31세 세계 최연소 총리 탄생을 예고했다. 제1당 대표 제바스티안 쿠르츠는 1986년생이다. 한국 정치인들은 애써 못 본 체한다. 기득권에 하등 도움이 안 될 테니까. 언론의 관심도 이틀을 못 갔다.

30~40대는 지도자로선 의문부호가 붙는 나이다. 패기와 야망을 갖기에는 충분해도, 경험과 연륜은 아무래도 부족하다. 왕조시대면 몰라도, 현대의 선거에서 30~40대가 지도자로 선출되는 건 파격 중의 파격이다. 하지만 프랑스 유권자는 나폴레옹(집권 당시 40세)보다 더 젊은 39세 마크롱을 선택했다. 올해 취임한 아일랜드 리오 버라드커 총리(38), 벨기에 샤를 미셸 총리(41)도 1970년대 후반생이다. 이립(而立)과 불혹(不惑)의 현직 대통령·총리가 유럽에선 벌써 15명이나 된다.

영·미권에선 진작 경험했다. 영국 블레어, 캐머런 전 총리와 캐나다 트뤼도 총리는 43~44세에 집권했다. 오바마는 47세에 최강대국의 대통령이 됐다. 선진국의 젊은 지도자 붐이 우연의 일치일까.

한국에선 정치신인 돌풍을 찾아볼 수 없다. 사회 진출이 늦고, 서열의식이 강한 데다, 신인에게 불리한 선거제도 등이 원인일 것이다. 평균수명 80세 시대에 지도자 숙성 과정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유권자들도 총론에선 물갈이를 희망하지만 투표소에 가면 익숙한 이름부터 찍는다.

국내에서도 ‘젊은피’가 각광받던 시절이 있었다. 1971년 YS·DJ는 ‘40대 기수론’으로 태풍의 눈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희대 동기인 강삼재 전 의원은 33세이던 1985년 총선 때 경쟁자들의 봉투·선물공세에 맞서 자신의 기호가 찍힌 성냥 15만 개를 돌려 당선된 일화도 있다.

그러나 정치 세대교체는 갈수록 퇴행하는 모습이다. 3김(金)이 한 세대를 누리는 동안 인물이 크지 못했다. 2000년대 초 정치권에 진입한 386세대가 이젠 50대(586) 중진이다. 이들이 3~4선을 쌓는 동안 아래 세대는 눌려서 기를 못 폈다. 이는 30~40대 의원 숫자로도 입증된다. 선관위에 따르면 17대 129명(43.1%)이던 30~40대 의원이 18대 95명, 19대 89명에서 20대 국회는 고작 53명(17.7%)이다.

여당은 ‘586’이, 야당은 ‘다선 올드보이’가 첩첩이 진입장벽을 쌓아놓은 셈이다. 청년 비례대표도 정당의 액세서리 수준이다. 지역 구도까지 더해져 ‘뉴 페이스’에겐 더더욱 좁은 문이다. 이런 풍토에서 유럽처럼 ‘위즈키드(whizz-kid·젊은 귀재)’의 출현을 기대할 수 있을까.

물론 젊다고 다 참신한 건 아니다. 급변하는 세상에 대해 부단히 공부하고 미래지향적 사고를 지녔다면 나이는 상관없다. 하지만 화석화된 낡은 이념에 갇히고, 기득권 유지에 혈안인 이들이 정당마다 똬리를 틀고 있다. 어떤 공천방식을 도입해도 현역 프리미엄은 불변이다. 기득권 유지는 여야 간 암묵적 담합의 영역이다.

그런 점에서 국회의원 ‘3선 제한법’을 진지하게 검토할 때다. 선수(選數)가 쌓일수록 계파나 만들고, 권력을 이용한 지대추구에 혈안이기 일쑤가 아닌가. 소선거구제는 신인 등용을 막고, 지역 토호를 양성하는 통로와 다름없다. 다선 거물들은 계파 보스 행세하며 의사당 맨 뒷줄에 앉아 딴 궁리나 한다. 직위가 올라갈수록 무능해진다는 ‘피터의 원리’를 연상케 한다. 미국 상원에서 양당 원로들이 맨앞에 앉아 의정을 주도하고 후배들이 보고 배우는 것과 대조적이다.

말로만 계파청산, 정치개혁 운운할 게 아니다. 의원 3선 제한과 특권 축소로 풀 수 있다. 지자체장도 3연임으로 제한하는데 못할 이유가 없다. 3선만 해도 12년이다. 참신한 신인에게 길을 터주는 게 진짜 봉사다. 선진국의 신인 돌풍은 한국 정치권이 깊이 탐구해야 할 주제다. 왜 ‘늙어가는 유럽’이 국민 평균 나이보다 젊은 지도자에게 나라를 맡기는지. 파괴적 혁신이 일상화되는 ‘가속의 시대’에 정치야말로 예외일 수 없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