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유화정책' 실패의 역사에서 배워야
국제 정치사는 히틀러의 야욕에 길을 터준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의 ‘유화정책(appeasement policy)’에 사형선고를 내렸다. 2차 세계대전이 ‘히틀러의 전쟁’임은 맞지만, 히틀러의 도박을 초기에 제재하지 않고 협상카드를 내밀며 세 차례나 독일을 방문해 대화와 협상으로 독일을 달래가며 외교적 해결을 시도한 체임벌린의 무지와 오만을 비판한 것이다.

1938년 9월 체임벌린은 히틀러를 만나 독일이 수데텐(Sudeten) 지역을 점령하는 대신 체코슬로바키아의 나머지는 손대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다. 이른바 뮌헨협정이다. 체임벌린은 히틀러의 약속을 믿고 자신이 체코를 구했으며 ‘우리 시대의 평화’를 성사시켰다고 협정문을 흔들어 보였다. 하지만 불과 6개월 만에 히틀러 군대는 체코의 나머지 지역으로 진격해 수도 프라하를 점령했다. 다시 6개월 후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공했고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지난 24일 문재인 대통령은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어 북한의 ‘핵·미사일 대응책’ 마련을 지시했다. 하지만 ‘대응책 마련’이 아니라 ‘확실한 대응책’을 지시해야 했다. 이렇게 정부의 대북정책은 갈팡질팡하며 국제 사회와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예를 들어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늦춰 중국을 달래고 북한과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핵 문제를 풀어 나가려던 문재인 정부의 ‘운전자 역할론’은 북한의 거듭된 대화 거부와 미사일 발사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대화 헛발질’이었다. 사드 배치도 그랬다. 미사일 발사와 6차 핵실험으로 배치가 불가피했지만 지지 세력과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임시’ 배치됐다.

압박인지 지원인지 헷갈리는 메시지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에 최고 강도의 대북 압박 조치에 찬성한다고 말하며, 또 러시아에 대북 석유 금수조치를 요청하면서도 모순되게 북한 영유아와 임산부를 위해 9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유엔 연설에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만큼의 강한 압박이 필요하다면서, 또 동시에 유엔 역할론과 ‘다자주의 대화’를 강조했다. 한·미·일의 대북 압박과 4자·다자 대화는 갈등 관계다. 그럼에도 “한목소리로 압박”을 주장하며 또 한편으론 대북 지원, 개성공단 재개, 다자대화를 추진하는 정책으로 메시지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유화와 강경의 모순된 정책의 결정판이다. 이 때문에 미국·일본과 북한·중국 모두에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자신의 정치적 스승인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경제정책처럼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하는 듯하다.

이유는 문재인 정부가 현실과 당위의 중간에 끼여 무지개를 좇아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 후 국무회의에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힘도 합의를 이끌어낼 힘도 없다”고 토로했지만,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이상을 밝힌 이유가 바로 그 무지개 때문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정치적 생존과 국가 수호를 위해 현실과 당위를 구분하는 군주가 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전쟁은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지만 역사는 유화정책으로는 전쟁을 막아낼 수 없음을 증명하고 있다. 조지프 나이는 히틀러의 침공에 결연히 맞서지 못한 체임벌린이 실제로는 겁쟁이가 아니라 전쟁을 피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했다. 전쟁은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라 결연히 맞서야 저지할 수 있음을 역사는 가르치고 있다.

실험과 역사가 증명하는 합리적 선택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다. 그렇다면 ‘핵에는 핵’으로 핵 위협에는 핵으로 맞서는 정책이 답이다. 따라서 적어도 미군과 공유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식 전술핵 재배치는 필수다. 우리가 핵을 가지지 않고서는 북한과 대등한 상황에서 대화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스마르크는 “우자(愚者)는 경험에서 배우지만, 현자(賢者)는 역사에서 배운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대화와 유화정책으로는 독재자 히틀러나 다름없는 김정은의 핵 폭주를 막고 전쟁을 예방할 수 없음을 체임벌린의 외교로부터 깨달아야 한다. 많은 국민은 북한 핵 위협에 우왕좌왕하지 않고 결연히 맞서는 대통령을 보고 싶어 한다.

김인영 < 한림대 교수·정치학 iykim@hallym.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