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김현종 본부장의 잦은 방미 이유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 왔다. 지난 20일 들른 지 나흘 만이다. 그는 3박5일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갔다가 내달 초 다시 돌아온다. 2주일 동안 세 번이나 오는 셈이다.

김 본부장은 이번 방문 기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돼 있는 백악관 의회 행정부 싱크탱크 인사들을 ‘초치기’ 일정으로 만날 예정이다. 한·미 FTA의 호혜성을 강조하고 공감하기 위한 자리다.

한 달 전만 해도 김 본부장은 느긋했다. 한·미 FTA 개정 협상을 요구하는 미국 측에 “서두를 이유가 없다” “한·미 FTA 효과 분석부터 해보자”고 버텼다. 지난달 22일 서울에서 열린 1차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때도 똑같이 주장했다. 미국 측 협상단은 쌀을 포함한 농산물 추가 개방까지 요구하고 밀어붙였지만 얘기가 통하지 않자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한국에서는 “미국에 할 말을 했다”며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런 김 본부장 태도가 한 달 만에 180도 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는 지난 20일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수행 중 따로 워싱턴DC에 와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만났다. 다음날 2차 회의를 하자고 공식 제안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는 바대로다.

1차 회의 결과를 보고받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뭐하자는 것인가”라며 한·미 FTA 폐기를 지시했다. 폐기 논의는 겨우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한국산 태양광 전지와 산업용 발전기 등이 새로운 보복 대상으로 떠올랐다.

“한 번 밀어붙였으면 한 번 당기는 게 협상의 기본”(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이라는 설명이 맞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우려가 많은 게 사실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워싱턴DC 소식통은 “한·미 FTA 협상에서 ‘정면돌파’ 작전을 쓰다 갑자기 ‘로키(low-key)’로 돌아서는 과정이 너무 어설프고 위험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냉엄한 국제사회 질서를 직시하고 장기 전략에 따라 대응하는 게 아니라 국내 지지층을 고려한 정치적 판단으로 대외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런 지적이 일부의 ‘기우(杞憂)’이기만을 바란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