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의 데스크 시각] '빅2' 위기의 본질
한국 재계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고 어둡다. 10대 그룹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SK, GS 정도를 빼곤 성한 곳이 거의 없다. 안으로는 반(反)시장적 입법과 규제가 넘쳐나고 밖에는 중국의 견제나 북핵 같은 불확실성이 성난 파도처럼 넘실댄다. 삼성의 위기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부재가 결정적이다. 일부 독자들은 “또 그 소리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실적과 주가는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고 할 것이다.

하지만 삼성은 앞으로 5년 뒤 모습을 전혀 그리지 못하고 있다. 그게 삼성 위기의 본질이다. 사업재편과 구조조정은 1년 가까이 올스톱됐다. 이것은 인사 지체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세상 어떤 기업도 군살을 빼지 않고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지 못한다.

미래 생존 가능한가

과거 이 부회장은 석유화학과 에너지사업을 한화와 롯데에 넘겼다. 요즘 이들 업종이 호황가도를 달리면서 “삼성이 잘못 판단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실제 한화, 롯데는 세칭 삼성과의 ‘빅딜’에 크게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하지만 화학사업을 존속시켰다 한들 삼성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수익의 비중은 여전히 미미한 규모였을 것이다. 핵심은 가격이 아니라 원칙이었다. 이 부회장의 원칙은 “글로벌 경쟁력이 없는 사업은 잘할 수 있는 곳으로 넘기자”는 것이었다. 삼성전자의 프린터사업도 그런 이유로 휴렛팩커드(HP)에 팔렸다.

이 부회장은 그룹이 갈 길을 장황하게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빠르게 판단하고 과감하게 실행했다. 임직원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방향성을 알아차렸다. 지금 삼성에는 이 부회장을 대체할 존재가 없다. 그렇다고 그에게 ‘옥중 경영’을 기대할 수도 없다. 정상적 환경에서도 엄청난 체력과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 기업 경영이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불구속 재판’의 필요성을 강조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부회장 부재가 길어질수록 삼성의 미래는 어두워질 것이다.

현대자동차 위기는 다소 복합적이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엔저’ 같은 외부적 요인에 ‘고비용 생산구조’와 ‘제품 포트폴리오 약화’와 같은 내부적 요인이 가세하고 있다. 올해 예상 판매량이 생산능력(900만 대)을 크게 밑도는 700만 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는 내부 분석은 어디에선가 과잉 투자가 이뤄졌다는 점을 의미한다.

오너가 전면에 나서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파죽지세로 시장을 휘저은 현대·기아차 경쟁력은 뛰어난 연비와 품질에 있었다. 하지만 ‘셰일가스 혁명’으로 강점은 약점으로 변해버렸다. 기름값이 싸지자 대형 세단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대한 수요가 힘을 받기 시작했다. 엔저를 앞세운 일본 자동차회사들의 반격도 거세졌다. 여기에 미국 앨라배마 공장 등의 인건비까지 급증했다. 한국 근로자들의 고임금 구조를 전해들은 현지 근로자들이 동등한 대우를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꺼번에 너무 많은 악재가 터진 탓인지, 현대차그룹은 좀처럼 반전의 모멘텀을 찾지 못하고 있다. 결국 삼성과 비슷한 논리로 오너가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 난마처럼 얽힌 문제들을 풀어 나갈 수 없다. 지금보다 훨씬 강하게 사업현장을 장악하고 조직을 추슬러야 한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비효율적이다 못해 무효율적이다. 현 단계에서 삼성, 현대차 오너들보다 해당 산업에 더 전문적인 식견과 문제해결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없다.

조일훈 부국장 겸 산업부장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