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한국이 일본을 상대하기 버거운 이유
옛날 일본에 문물을 전해줬다는 심정적 우월감에 젖어서인지, 최근 한국의 소득 수준이 일본에 버금갈 정도로 높아졌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한국은 애써 일본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듯하다. 양국 ‘가계조사’에 기초해 계산해보면 2000년 일본이 한국보다 2.8배나 높았던 근로자 가구 월평균 소득은 2016년 1.3배(일본 627만5500원, 한국 488만4400원)로 좁혀지고 있다.

소득 수준이 높아졌다고는 해도 외교 무대에서 한국의 국가 위상은 일본에 비해 초라하며, 서로 맞붙어도 장기전이나 집단전에서 일본을 당할 수 없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한국이 일본을 당해내지 못하는 데에는 다 까닭이 있다. 어설픈 지식, 분열, 비일관성을 들어 진단해보자.

우선 깊이 공부하지 않는 어설픈 지식을 들 수 있다. 한국인은 여기저기 관심을 보이는 경향이 강해 일본인에 비하면 다방면을 섭렵하는 사람이 많다. 하여 단기 개인전으로 일본인과 한판 붙는다면 대개는 한국인이 판정승을 거둔다.

문제는 장기전과 집단전일 때다. 한국인은 뉴스도 많이 보고 카톡(일본에선 주로 ‘라인’을 사용) 화면도 자주 두드리지만 깊이 파는 습성은 일본인이 훨씬 더 몸에 배어 있다. 고로 어떤 특정 분야에서 장기전으로 맞붙는다면 한우물 파는 일본인을 당할 수 없다. 집단전에서도 한국은 열세를 면하지 못한다. 여러 분야 전문인이 모인 집단에서 규칙을 지키며 질서 있게 임하는 일본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분열이 잘 된다는 점도 우려 사항이다. 한국에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하고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보도 곧잘 나타난다. 사람인 이상 시기와 질투심이 없으랴마는 일본은 ‘나눠 갖기’와 ‘부족해도 참기’를 잘하는 편이다.

2013년 시작된 ‘아베노믹스’로 소득 수준이 늘어난 듯 보이지만, 달러 환산 소득 수준은 오히려 크게 줄어들었다. 2012년 4만8633달러였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16년 3만8956달러로 1만달러 가까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구인(求人)배율(=구인 수/구직자 수)은 1.5를 넘어설 정도로 사람 구하기가 어려우니 딴 나라 얘기다. 일본에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 경영도 고용흡수에 큰 몫을 담당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일본에 비해 일관성이 무척 떨어진다. 개인 차원의 비일관성만이 아니라 통치자가 바뀔 때마다 정책이 쉽게 변경돼버리는 국가 차원의 비일관성도 문제다. 내부지향성이 강한 일본인지라 외교에 능하지는 않으나 그동안 취해온 입장을 쉽사리 번복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주체성을 발휘해 국제관계를 풀어가는 자세를 보인다 해도 최근 북한의 폭주에 당사자로서의 주역을 담당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 배경에는 이전 정권과 일관성이 보장되지 못하는 한국적 한계가 도사린다.

섣부른 지식으로 ‘한번 지르고 보자’는 식의 한국식 일처리는 일본에선 극히 꺼리는 방식이다. 멋모르고 부딪히는 당랑거철(螳螂拒轍) 같은 무모함이 거의 없다는 말이다. 이를 부정적으로 말하면 모험심이 없다고도 할 수 있지만, 긍정적으로 말하면 철저한 사전조사로 위험에 대비하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서 ‘천황’이나 ‘일본’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이의를 달지 못하고 분열을 꺼리며 결속력을 다지려 한다. 통치자라고 해도 그동안 취해온 입장을 일관성 없이 쉬이 바꾸지는 않는다. 일본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단기적인 ‘문재인’ 정부라기보다 장기적인 입장에서의 ‘대한민국’ 정부다.

국중호 < 일본 요코하마시립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