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회의장이 “올해 국정감사(10월12~31일)에서는 증인을 과도하게 채택하는 등 ‘갑질’을 해서는 안 된다”며 “각 상임위원회는 이를 위한 필요한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그제 상임위원장단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다. 정 의장은 “국회가 지난해 증인실명제를 채택한 만큼 증인 채택 시 책임성을 더 높여달라”고 촉구했다. 너무도 당연한 지적이다.

1988년 부활한 국감에 대해 여러 문제점이 제기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회의원들이 호통·막말도 모자라 답변을 끊고, 자기 할 말만 늘어놓는 것은 흔한 풍경이었다. 피감기관에 몇 트럭분의 자료를 무분별하게 요구하는 일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특히 무더기 증인 채택은 국회의 고질적 악습(惡習)으로 꼽힌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지난 1년간 일을 제대로 했는지 살펴보자는 게 국정감사다. 말 그대로 ‘국정’이 국감의 중심이 돼야 한다. 하지만 정치권은 민간 기업인들까지 증인 또는 참고인으로 불러내는 것을 특권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국회가 불러낸 기업인 국감 증인 수는 점점 늘어 17대 국회 때 연평균 52명에서 20대 국회인 지난해엔 150여 명에 달했다.

정작 기업인들을 불러도 하루종일 대기하게 하고 질의는 고작 몇십 초, 길어야 몇분이다. 심지어 질의도 못 받고 돌아간 기업인들도 수두룩하다. 특정 이슈로 주목받는 기업인을 두고 여러 상임위가 증인 채택 쟁탈전을 벌이는 사례도 빈번했다. 해마다 비난여론이 거셌지만 국회는 귀 막고 눈 감았다. 오죽했으면 정 의장이 ‘국회 갑질’이라고 하겠나. 기업인을 무더기로 불러내는 것이 기업에 영향력을 키우거나 각종 청탁을 넣기 위한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국정감사법 10조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누구든 국회 상임위가 의결하면 증인으로 출석해야 한다’고 돼있다. 필요하다면 기업인을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중해야 한다. 기업인이 증인으로 채택됐다는 사실만으로 해당 기업의 신인도와 브랜드 가치에 영향을 미친다. 올해부턴 민간이 아니라 국정을 제대로 감시하는 국감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