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특허(特許) 인프라 다져야 창업·혁신 불지핀다
미국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등 부당한 무역관행을 조사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지 나흘 만에 중국의 지재권 침해조사에 공식적으로 착수했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거의 사용하지 않던 무역압박 카드까지 꺼낸 데에는 다양한 배경이 숨어 있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앞으로 미국은 자국의 지재권을 더욱 강력하게 보호할 것이란 사실이다.

‘짝퉁 제조국’이라 불리는 중국으로선 지재권 침해문제는 여전히 가장 취약한 약점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5년, 10년 후에도 그럴까. 필자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9년 원자바오 총리는 지식재산전략을 과학기술전략, 인재양성전략과 더불어 3대 국가발전전략으로 공표했다. 지재권전문법원 설립, 지재권 침해에 대한 처벌 강화 등 지재권 제도와 인프라도 무서운 속도로 정비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시진핑 주석이 지재권 침해 엄중 처벌, 특허심사 품질 제고 등을 지시했다. 중국과 같은 체제에서 최고 지도자가 개혁을 주도했을 때 어떻게 변할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중국이 이렇게 지재권 분야 개혁에 국가 역량을 집중하는 이유는 단순히 ‘짝퉁 제조국’의 오명을 벗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국가 경제의 성장 동력인 창업을 활성화하고 혁신 정신에 불을 지피는 데에는 지재권 제도가 가장 강력한 촉매가 된다는 사실을 국가 지도층이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지식재산이 창업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임을 인지하고 있다. 하버드, MIT(매사추세츠공과대), 파리공대 등을 포함한 세계적 연구기관의 연구결과도 특허 등 지재권을 보유한 스타트업의 성공률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월등하게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창업에서 특허가 핵심 요소라지만, 우리에겐 아직 남의 나라 얘기인 듯하다. 한국에선 특허를 받아도 쉽게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 특허 무효율은 45%다. 일본(18%), 미국(26%)에 비교해 너무 높은 수치다.

2015년 중소기업중앙회 발표에 따르면, 특허를 가진 국내 500개 중소기업 중 절반 이상이 특허 분쟁을 겪고 있다고 한다. 소규모 기술과 특허에 의존하는 중소·벤처기업은 특허가 무효화되면 대기업에 비해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기에 높은 특허 무효율은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된다. 심지어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하고, 분쟁 시 해당 특허를 무효화시킨다는 전략까지 세운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또 벤처·스타트업에 특허는 자금을 공급받는 주요 수단이자, 무형의 수표와 같다. 정부가 내준 수표가 어느날 갑자기 종잇장이 될 확률이 높다면, 어느 누가 그것을 믿고 사업을 할 수 있을까. 이래서야 창업이 활성화되고 혁신이 집중되는 국가가 될 수 있겠는가.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필자는 특허 1건당 심사투입 시간의 관점에서 그 이유를 분석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심사관이 특허 1건당 평균 약 10시간을 투입하지만 유럽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30시간 내외를 투입하고 있다.

남들이 세 번 공부할 때 한 번만 공부하고 시험을 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심사관 모두가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가 아닌데 이런 상황에서 심사 품질이 경쟁국가보다 좋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중소·벤처가 주도하는 창업과 혁신 성장’의 국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건강하고 튼튼한 지식재산 인프라를 다져나가야 할 시점이다. 우리 중소·벤처기업이 강력한 지재권으로 무장해 세계 시장에서 미국 중국 등의 글로벌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백만기 < 산업통상자원부 R&D전략기획단장 겸 한국지식재산서비스협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