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미래의 '물 폭탄' 대비가 시급하다
올여름 충청도에 내린 시간당 최대 100㎜에 달하는 폭우는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냈다. 물을 다스리는 일, 치수(治水)사업은 오래전부터 인류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계속돼 왔지만 아직까지 자연을 완전히 예측하거나 대처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우리 다음 세대는 지금보다 더 어려운 상황을 마주할 가능성이 크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뿐 아니라 발밑에서 차오르는 물 또한 우리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전 지구적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된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2100년이 되면 2000년 기준으로 해수면이 많게는 1m가량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에는 이 수치가 두 배까지 될 수 있다는 연구 논문도 발표됐다. 수천 년 동안 치수 문제의 답을 찾지 못했는데, 변수가 더해져 더욱 까다로워진 방정식을 풀어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이미 국토가 바다에 잠기기 시작한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는 국제 사회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해수면 상승의 주 원인으로 지구온난화를 주목하고 있다. 따뜻해진 대기나 바닷물이 극지방을 불안정하게 만들면서 바다로 유입되는 빙하의 양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물을 가득 채운 잔에 얼음을 집어넣는다고 생각하면 우리에게 닥칠 미래를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남극대륙을 덮고 있는 빙하가 전부 바다로 흘러들어가면 해수면은 60m가량 올라갈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남극대륙을 둘러싸고 있는 얼음덩어리인 ‘빙붕’이 이를 막고 있지만 이미 곳곳에서 저지선이 무너지고 있다. 지난 7월에는 경기도 크기의 라센C 빙붕이 남극대륙에서 떨어져 나가는 모습이 위성사진으로 관측되기도 했다. 한 번 구멍이 뚫리기 시작한 제방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무너지기 마련이다.

미래에 빨간불이 켜졌지만 바로 시행할 수 있는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바다로 쏟아져 들어오는 빙하를 물리적으로 막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환경을 보호하자는 캠페인은 전파 속도가 너무 더디다. 난치병을 치료할 약이 없다면 병과 싸워 이길 면역력과 체력을 기르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누가 지구를 따뜻하게 만들고 있는지, 무엇이 남극의 빙하를 녹이고 있는지 아는 것은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불편함이 따른다 하더라도 변화를 감시하고 미래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은 계속돼야 한다.

지난 4일 미국 행정부는 유엔에 파리기후변화협정을 탈퇴하겠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전달했다. 전 세계 200여 개국에 달하는 나라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지 2년이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같은 날, 영화 ‘불편한 진실’의 속편이 미국에서 개봉했다. 11년 전 지구온난화 위험성을 경고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이 영화에서 우려가 현실이 됐다고 전한다. 발밑에서부터 차오르는 물의 위협은 멀게 느껴지고 지구온난화를 완화하고 해소하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은 너무 많다. 기업이나 정부, 사회조차도 해수면 변동에 대한 진단과 조치가 다르다. 이 같은 혼란 속에서 지구가 따뜻해지는 책임이 온전히 인간에게 있는지 의문이 든다면 고어 전 부통령이 남긴 말을 읽어 보기 바란다. “인간이 화성에 살 것이라는 말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우리의 집은 지구다.”

이원상 < 극지연구소 해수면변동사업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