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진해운 비극'을 딛고 서려면
지난해 9월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6부는 한진해운의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했다. 그렇게 국내 1위, 세계 7위의 컨테이너 정기선사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물류 대란이 초래됐다. 이후 정부는 한국 해운의 위상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왔다. 한진해운 법정관리 결정 두 달 뒤인 10월31일에는 정부 부처 합동으로 한국선박해양 설립 등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대책을 내놓았다. 올 들어 지난 14일에는 국회 차원의 국내 해양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지원 촉구 결의안도 나왔다.

한국 해운 재건 프로그램의 핵심은 대형 컨테이너선사 육성, 중견 아시아 역내선사 육성, 경쟁력 있는 대형 벌크선사 육성 등으로 요약된다.

첫째, 대형 컨테이너선 시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현대상선은 36만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개) 규모다. 세계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머스크는 400만TEU 규모고 세계 6대 선사의 평균은 213만TEU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이전 한국 컨테이너 정기선사의 위상(세계 5위)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200만TEU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까지 정부는 해운산업에 5조~10조원 규모의 지원을 발표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는 해양산업 지원을 위해 해양진흥공사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거대 지원 조직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 산업별로 특화된 현실성 있는 지원정책을 강구해야 할 때다.

현대상선은 2M(머스크, MSC)과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2020년 3월31일까지 2M의 네트워크와 서비스를 공유할 수 있다. 그러나 계약이 끝나면 현대상선은 경쟁력을 스스로 증명해 보여 2M의 일원으로서 2M이 서비스하는 세계 모든 항로에 참여하는 세계적인 선사로 도약하거나, 독자적으로 선대를 육성해 다른 얼라이언스(해운동맹)에 참여해야 한다. 두 경우 모두 최소 1만8000TEU 이상 선박이 최소 20척 필요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현 선복(화물을 실을 수 있는 공간) 과잉 상태를 더욱 악화시키게 될 수밖에 없다.

이제부터는 우리도 마켓 추종자가 아닌 마켓 리더와 개척자가 돼야 한다. 1만4000TEU(파나마운하 통과 가능 선형) 선박을 일시에 20척 정도 건조해 1주일에 최소한 두 번 미국 동해안을 고속으로 연결, 전체 운항기간을 30% 정도 줄이는 프리미엄 서비스로 고(高)가격대 화물을 집중 공략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면 지금처럼 선박의 대형화를 통한 저가 경쟁에 치중해 선복 과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해운시장에서 새로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 또 선박 대형화를 망설이고 있는 많은 선주들에게 동기를 부여해 한국 조선업 부활의 마중물 노릇을 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아시아 역내 항로는 그동안 비교적 시장이 안정돼 있었고 덤핑도 자제해 한국 정기선 해운사들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한진해운이 사라지면서 신규 회사들이 진입해 시장 상황이 악화되자 해양수산부는 자율적인 시장질서 회복 및 공생의 틀을 짜주기를 선주협회에 요청했고, 14개 컨테이너선사들의 참여로 한국해운연합(KSP)이 결성됐다. 그러나 이는 세계무역기구(WTO)나 미국연방해사위원회(FMC) 등의 운임 담합에 대한 의심의 시선을 피해 나가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대형 벌크선사들의 과제는 국제 해사기구의 환경 관련 규제가 시행되는 2020년 이후의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 친화적인 신조선 건조가 절실한 이유다. 현재 벌크선 신조선은 중국과의 건조 가격 격차가 20%에 달한다. 한국 조선소의 질적 우위를 감안하면 10%의 가격 차이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20%의 차이는 애국심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의 획기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한 예로 국내 대형 화주와의 장기운송계약 체결 아래 건조되는 선박은 화주가 선박 건조에 10%가량 투자하는 지분 참여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외국에서 시행된 다양한 선박부분 투자 방법들도 적극 개발해야 한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국내 조선소 활성화에도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

한국 해운의 진흥 계획은 선사들의 경험에 바탕을 둬야 한다. 이제는 책상머리 정책이 아니라 현장의 소리를 듣고 이를 정책화해야 한다.

전준수 < 서강대 석좌교수·경영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