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지역 맞춤형 통상정책 펼 수 없나
한국 경제가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주가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2.6%에서 3%까지 상향조정될 정도다. 국가적으로는 다행스러운 일인데도 경제학자, 경제전문가들을 곤혹스럽게 하기에 충분하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하는 게 아닌가 우려했다. 필자도 중국의 광속 발전, 무한한 창업열기에 기가 질려 우리 경제가 중국중심 가치사슬의 한 부분으로 빨려들어가지 않을지 우려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 걱정을 거두게 한 것은 역시 수출이 상반기에만 전년 동기 대비 15.8%의 증가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는 성장동력을 계속해서 해외에서 찾고 있다. 그럴수록 중요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외경제의 중요성을 재삼 인식해 진두지휘해야 한다는 점이다.

중국이 자국통화 위안화의 국제화에 본격적으로 나섰을 때 많은 나라가 시큰둥했다. 2014년 초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영국 총리가 구세주가 됐다. 베이징을 전격 방문해 “런던이 위안화의 국제화를 도와주겠다”고 선언했다. 이것이 위안화가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 바스켓에 들어가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런던은 위안화를 활용한 금융거래를 포함, 세계금융거래 산실의 지위를 계속 지키게 됐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마찬가지다. 메르켈 총리는 지멘스 등 자국 기업이 굵직한 중국 프로젝트를 수주할 때, 격식을 무시한 채 현장으로 뛰어가 성사시켰다. 베이징으로 가서 복잡한 의전행사를 하는 데 집착하지 않았다. 이들 국가는 세계경제활동을 위주로 선진국 지위를 유지하는 공통점이 있다. 그만큼 이들 국가의 지도자는 실리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작품이다. 당시 노 대통령이 국수적일 것이라는 선입관에 의표를 찌르는 결론을 낸 바 있다. 돌이켜 보면 한·미 FTA 체결은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을 이나마 하게 된 계기가 됐다. 현 정부도 못할 게 없다. 문 대통령의 소탈함은 캐머런이나 메르켈을 뛰어넘기에 충분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정부조직법을 개정하면서 통상교섭본부를 회복시킨 것이다. 4년 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통상교섭본부가 특별한 이유도 없이 폐지됐다. 그때 해외시장에 크게 의존하는 우리 경제를 어쩌려고 저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담당기관의 존재가 최선일 수는 없다. 하지만 기관이 있으면 하기에 따라서는 성과가 날 가능성도 있다.

우선 내부 조직을 잘 짜야 한다. 에이스급 공무원들로 채워야 한다. 과거에는 자리 채우기 인사에 급급했다는 쓴소리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통상 관련 우리 기관들의 해외 조직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력신장으로 세계 웬만한 국가의 수도에는 대사관이나 영사관 등 공관은 물론이고, KOTRA나 한국무역협회 지부가 있다. 통상교섭본부가 이들 기관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공관의 경제·통상부문이 통상교섭본부와 유기적으로 연계해 충분한 활동이 가능케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세계를 아세안(ASEAN)권, 중화권, 미주권, 유럽권, 아프리카권, 남미권 등 5~6개 권역으로 나누고, 거점지역에 인력을 늘려 확실한 맞춤형 통상정책을 시행하면 어떨까 한다.

이번 경제회복은 ‘역내수요’의 중요성을 재인식시켜 주고 있다. 서울을 중심으로 비행거리 5~6시간 이내의 지역을 중점적으로 협력파트너로 삼는 정책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번 수출호황 국면도 결국 베트남 등 아세안 국가들이 효자 노릇을 한 덕이다. 경제정책 입안자도 역내 국가들이 어떤 경제조치를 취하는지 유심히 관찰해 경제정책에 선제적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 통상교섭본부도 한 단계 성숙해 국내 경제 운영의 큰 축으로서 자리잡기를 기대해 본다.

정영록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