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평범이라는 행운
잘 안다고 생각하던 분과 차 한잔 하고 헤어지는 순간 그가 무심히 날 쳐다보며 말했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뭘….”

나는 혼자 걸어오면서 생각했다. 그래, 그는 평범하지, 특별히 내놓을 것도 없는 사람이다. TV나 신문에 얼굴이 나오는 사람도, 사람들의 대화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람도 아니다. 부자도 가난뱅이도 아니다. 본인의 말대로 지극히 평범해서 기억에 빛나게 솟아오르는 사람은 분명 아닌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그 생각을 좀 더 길게 끌어갔다. 그런데 말이지 그 사람은 반대로 별로 나쁠 것이 없는 사람이다. 딸, 아들을 한 번의 낙방 없이 대학을 졸업시켜 별 놀라울 것도 없는 곳에 취직해 서른 안쪽으로 결혼시키고 다시 손주를 보고, 두 부부는 별로 말도 없이 서울 인사동을, 삼청동을 걸어다니다가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책을 읽다가 비빔밥을 먹고 집에 들어가는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래, 그것이 과연 평범한 것인가를 너무 늦게 생각해본 것이다. 어쩌면 그 사람은 누구보다 귀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의 사는 평범은 다른 사람에게는 탁월한 행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너무 늦게 한 것이다. 그 사람은 내게 특별한 적이 없었다. 늘 그 사람의 옆사람들이 나의 관심이었던 것이다. 이름이 사회에 알려져 있고, 자신의 일에는 성공 그 자체였으며, 바둥바둥 오르는 일에 적응해가는 그들을 나는 성공이라고 부르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들은 늘 엎치락뒤치락이었으며 가족이, 자신이 늘 불평과 위기에 몰리는 경우도 많았다. 생활과 일상이 잔잔한 적 없는 사람들이지만 자신의 이름에 전전긍긍하는 그들이 ‘성공’이라고 나는 이미 수첩에 적어놨는지 모른다.

그런데 평범을 자처하는 그 사람은 격랑의 파도가 거의 없었다. 늘 고요했고 잔잔했다. 물론 그 나름으로 파도가 있었겠지만 그것은 아주 기본적인 인간 삶의 파도였을 것이다. 그 사람은 스스로 “못난 사람”이라고도 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의 평범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얼마나 복받은 것인지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너무 모자라도 넘쳐도 안 된다는 것을 지난 장마 때도 느낀 일들이다. 가뭄으로 논밭이 타들어가 땅이 쩍쩍 갈라진 것을 보면서 가슴도 그렇게 갈라지지 않았는가. 눈물이라도 마구 흘려 그 땅을 적시고 싶은 마음이 넘치곤 했었다. 그런데 비가 오긴 했으나 물 폭탄으로 쏟아져 가뭄보다 못한 상처를 할퀴며 지나갔던 것이다.

‘보통’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테레사 수녀는 말했다.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없다. 다만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에 동참할 수는 있다.”

그 평범의 주인공은 그 보통과 평범을 지키기 위해 그 가족들 모두 무진장 참고 견디는 천사들이었을 것이다. 과도한 것은 손대지 않고 욕구를 억누르며 가능한 일에 최선의 성실을 쏟은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인생에서 과욕을 참을 줄 안다는 것은 이미 성인대열이다.

그는 정말 삶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안정이고 평화이며 별로 뜨겁게 사랑하지 않아도 손잡고 삼청동을 거니는 노부부의 노력에서 빚어지는 삶의 행운일 것이다. 그렇다. 노후에 맛보는, 싱겁기도 하고 맛도 별로 없지만 편안하고 우수한 사랑의 영양떡이 아니겠는가.

신달자 <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