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부메랑 돼 돌아올 '결과 평등주의' 유혹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의 소득불평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미국에 이어 2위로 악화됐고, 이 같은 소득불평등을 바로잡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형식에 그친다고 했다. 멋진 말이지만 심각한 오류를 깔고 있다. 한국의 소득불평등이 OECD 2위라는 설명은 사실과 한참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한국은 소득불평등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악화되다가 2010년 이후 개선되면서 그 순위가 OECD 국가에서 중간 정도에 속한다. 소득불평등을 비교할 때 일반적으로 활용되는 지니계수는 낮을수록 소득불평등이 작다. 세금과 이전지출을 감안한 가처분소득을 기준으로 비교하면 최근 OECD 통계에서 2014년 기준 한국은 0.302로 OECD 평균(0.318)보다 낮다. 칠레(0.465)나 멕시코(0.459)는 물론이고 미국(0.394)과 일본(0.330)보다도 낮다. 변화 추세를 보면 한국은 2007년 0.312, 2010년 0.310, 2014년 0.302로 소득불평등이 완화돼 왔다.

소득집단 간의 격차도 둔화되는 추세다. 한국은 2007~2010년 가처분소득이 하위 10%는 3.8% 감소한 반면, 상위 10%는 0.6% 증가해 소득양극화가 커졌다. 그러나 2010~2014년에는 하위 10%가 9.0% 상승했는데 상위 10%는 4.6% 상승에 그쳐 소득양극화가 둔화됐다. 이에 비해 OECD 평균은 2007~2010년 가처분소득이 하위 10%는 5.3% 감소했는데 상위 10%는 3.6% 감소에 그쳤고, 2010~2014년에는 하위 10%가 1.1% 증가했지만 상위 10%는 2.3% 증가해 소득양극화가 심화됐다. 따라서 소득분포도나 양극단에 있는 소득집단의 격차를 보더라도 한국의 소득불평등이 다른 나라에 비해 더 심해졌다고 보기 어렵다.

국제비교연구 결과 소득불평등이 깊어지면 경제성장이 후퇴하고 민주주의도 위협받는 것으로 나타난다. 소득이 불평등한 국가일수록 행복지수도 낮아진다. 아울러 사람들이 인식하는 체감 불평등과 실제 불평등 사이에는 괴리가 발생한다. 미국은 실제보다 심각하다고 느끼는 반면, 북유럽은 실제보다 덜하다고 느낀다. 소득불평등을 실제보다 크다고 느끼면 자원의 배분이 왜곡돼 결국 행복과 경제성장은 그만큼 더 저하되고 정치사회 혼란은 가중된다.

소득불평등은 단기적으로 경기변동에 영향을 받고 장기적으로 산업과 노동시장의 구조를 반영하는 소득격차의 문제다. 소득불평등과 소득격차는 정치적 함의가 다르다. 소득불평등의 해소는 결과의 평등을, 소득격차의 완화는 기회의 평등을 지향하는 경향을 보인다. 사람들은 시장원리에 따라 결정되는 결과보다 더 평등하기를 원하지만 시장원리를 거부하고 기회 평등을 훼손하는 방법에 대해 정의롭지 못하다고 반대한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봤듯이 ‘결과 평등주의’는 소득불평등을 키웠지만 ‘기회 평등주의’는 소득 불평등을 완화했다. 한국이 그 전형적인 사례로 꼽힌다.

결과 평등주의의 유혹은 소득불평등 문제의 진실을 외면하게 한다. 결과 평등주의는 진보진영의 세력화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국민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 정치 불안과 저성장의 늪에 빠진 남미는 부의 재분배로 소득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유럽 또한 고세율과 소득재분배를 통해 복지국가를 건설했지만 기술혁신과 세계화,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워지면서 결과 평등주의에서 기회 평등주의로 선회하고 있다. 진보성향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나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그랬고 최근에는 평등국가를 표방하는 프랑스도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따라서 새 정부는 소득불평등 문제를 부각하기보다는 경쟁의 공정성을 저해하고 지원 및 규제의 투명성에 장애가 되며 지위의 이동성을 가로막는 제도와 관행을 개선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김태기 < 단국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