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세금에 대한 이해와 몰이해
1976년에 국회를 통과하고 1977년 하반기부터 시행된 부가가치세 때문에 박정희 정권이 종말을 맞았다고 보는 관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1978년에는 내국 세수의 무려 38%가 부가세였다. 상점들은 철시하고 다음해 ‘부마사태’가 터졌다. 각종 감면제도 폐지 등으로 박근혜 정권은 작년 기록적인 세금 풍년을 만들어 냈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의 선심도 그래서 가능하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 본인은 인기 폭락 끝에 탄핵당하고 말았다. ‘초(超)부자에게서만 세금을 더 걷겠다’는 문 대통령의 언어는 반(反)부자 정서에 충분히 영합하고 있다.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은 지난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좀 더 솔직하기를” 주문했다고 한다.

세금을 토론하기 위해서는 그러나 김부겸의 덕성이 아니라 약간의 지식이 필요하다. 일본은 245%의 국가부채를 감수하면서도 왜 끝내 소득세 증세를 포기했는지, 그리스 같은 나라들은 왜 법인세를 6%포인트 올렸다가 오히려 4.2%의 총세수 감소에 직면했는지, 스웨덴 같은 복지국가들은 왜 20~25%의 부가세를 유지하고 있는지, 왜 수많은 국가들이 법인세를 내리려고 그토록 안간힘을 쓰는지 따위의 질문들에 답할 수 있어야 우리는 세금 문제를 토론할 수 있다. 세금의 ‘귀착과 효과’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마치 경제학과 1학년 아이들처럼, 황금오리의 배를 가르자는 주장을 떠들 수는 없다. 일본이나 미국은 바보라서 증세가 아니라 국채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것도 아니요, 스웨덴 같은 나라들이 정의감이 부족해 부가세에 의존하고 있는 것도 당연히 아니다.

과표 소득에 세율을 곱하면 총세수라고 생각한다면 역시 자격이 없다. 전깃줄에 참새가 다섯 마리 앉아 있는데 한 마리를 쏘아 맞히면 몇 마리가 남는가? 네 마리라고 답한다면 뇌가 지나치게 단순하다. 인별 균등과세가 어떻게 아랍의 패권을 가져왔는지, 왜 역사적으로 10% 과세제도가 생겨났는지는 모르더라도 적어도 세수를 극대화하는 최적세율에 대한 개념, 그리고 국가부채를 늘릴 것인가, 세금을 더 걷을 것인가의 폴리시 믹스에 대한 장·단기 계산 정도는 가능해야 하는 법이다. 아무리 솔직해도 무식의 벽을 넘을 수는 없다. 참고로 조세재정연구원은 법인세를 1%포인트 올릴 때 경제성장이 1.13% 하락한다는 점, 총 법인세 세수를 극대화하는 적정 법인세율은 지방세를 포함해 23% 선이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바도 있다.

최저임금 결정하듯 또 그렇게 무작정으로 끌고 간다면 참새가 모두 날아가 버린 전깃줄처럼 나라살림은 텅 비게 된다. 이런 식으론 맨수어 올슨의 조폭국가조차 제대로 경영될 수는 없다. 조폭이 보호비를 뜯을 때도 적정수준을 추구한다는 것이 《지배권력과 경제번영》의 결론이다. 부자에게만 더 물리면 된다는 식이라면 참새 계산도 어려워진다. 이미 개인의 44%, 기업도 무려 47%가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2015년 조사). 한국의 조세부담률이 낮은 것은 부자들이 덜 내기 때문이 아니라, 납세 대상자의 절반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렇게 납세자 즉, 유권자들을 부패시켜 왔다. 면세자 비율이 한국에서 48%에 육박할 때 미국은 32.9%, 호주는 23%, 독일이 19.8%, 일본은 15.8%였다(2012년 소득 기준)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독일을 제외하면 소득불평등이 한국보다 더 심한 나라 대부분에서도 면세자는 한국보다 적다. 소수 부자들에게 납세가 집중돼 있다. 한국은 전체 납세자의 5.9%(과표소득 1억원 이상)가 총 소득세수의 76%를 내고 있다. 누구라도 자신이 땀 흘려 번 돈의 거의 절반을 국가에 바쳐야 한다면 그런 나라는 약탈적 국가요, 노예노동의 국가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한국의 부자들은 국가와 무엇을 동업하고 있기에 소득의 절반을 뜯기고 있나!

필요한 돈을 국가부채로 조달하는 것과 세금으로 조달하는 것 가운데 무엇이 경제적이며 윤리적인가. 또 무엇이 국가는 물론 국민들에게 좋은 삶을 가져다주나. 문재인 정부는 이런 문제들에 답해야 한다. 대학 총학생회 수준이라면 정말 곤란하다.

정규재 논설고문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