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기획재정부에 초(超)고소득층(과표 5억원 초과)과 초대기업(과표 2000억원 초과)의 소득세 및 법인세 인상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함에 따라 증세가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초고소득층 소득세율은 40%에서 42%로, 초대기업 법인세율은 22%에서 25%로 각각 올리자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증세안을 거의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중산층과 서민, 중소기업에는 증세가 전혀 없다. 이는 5년 내내 계속될 기조”라고 강조했다.

공약 수행에 막대한 재원이 들어가는 만큼 증세가 불가피하지만 ‘가진 자’들에게만 선별적으로 걷을 테니 대다수 국민은 안심하라는 메시지다. 하지만 이는 국민을 편가르는 것이며 대기업 고소득층에 대해서는 일방적 증세도 무방하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가급적 증세를 않겠지만 그래도 부족하면 국민적 동의를 전제로 증세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이번 증세와 관련해서는 대상자인 초고소득자와 초대기업은 물론 다른 국민들에게도 전혀 양해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부자와 대기업’들로부터는 언제 어떻게 뺏어도 상관없다는 로빈후드식 생각이라면 곤란하다.

물론 문 대통령 공약집에는 ‘소득세 최고세율 조정’ ‘재원 부족 시 법인세 최고세율 원상 복귀’ 등의 내용이 들어 있기는 하다. 그렇더라도 ‘초고소득자와 초대기업’을 마치 무슨 포로 다루듯 하는 증세는 형평성을 잃은 조치다. 결코 국민 통합에 도움이 될 수 없다. “올해는 세율 인상이 없다”던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이나 김동연 경제부총리 발언이 하루아침에 뒤집힌 것도 문제다.

게다가 ‘부자 증세’로 더 걷히는 세금은 5년간 19조원으로 100대 국정과제 달성 비용(178조원)의 10%에 불과하다. 세수효과는 크지 않으면서 갈등과 부작용만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여당 내에서조차 “정부 구조조정 없는 증세는 국민 동의를 얻기 어렵다”(이상민 민주당 의원)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