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한국에서 기업하는 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에 지난주 특검 측 증인으로 출석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대부분 발언마다 서술부를 추측형으로 일관했다. “~생각한다.” “~으로 안다.” “~했을 것이다.”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작업 일환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합병하면서 불법을 저질렀다는 뇌물공여 혐의 공판에서였다. “두 회사 합병은 경영상 판단에 의한 것이었을 뿐 경영권 승계작업과 무관하다”는 이 부회장 측 진술을 반박하기 위해 법정에 섰지만, 근거 제시 없는 사견을 늘어놓았다.

공직을 맡기 전 기업지배구조 개혁운동을 벌였고, 그 경력으로 ‘기업 검찰’ 수장(首長) 자리에까지 오른 그의 발언은 몇 가지 대목에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알고 있는 근거를 말해보라”는 재판장의 요구를 “증거는 댈 수 없지만 국민 모두가 아는 사실”이라는 주장으로 받아넘기는가 하면, “경영권 승계를 완성하려면 새로운 사업에서 성공해 경영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며 ‘자질 평가 가이드라인’까지 내놓았다.

역설적으로 그는 이 나라 기업과 기업인들이 소위 시민운동가들의 자의(恣意)에 얼마나 심각하게 휘둘리고 있는지를 증언해 줬다. 온갖 변수들이 튀어 오르고 뒤엉키는 기업경영 현장에서 고독하게 내려지는 의사결정을 ‘국민 모두의 상식’으로 재단할 수 있다고 강변하는 당당함에 당혹스러워진다. 그의 증언을 통해 충격적인 사실도 드러났다. 시민운동가 시절의 그가 주요 대기업들의 합병 상장 등 중요한 미공개 정보를 틀어쥐고 있었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정보를 제공했다는데, 그런 식으로 ‘상의’를 해서라도 서슬 퍼런 공격을 막아보려는 고육책이었을 것임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경영인의 역량과 자질을 관찰하고 평가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하지만 “(삼성이) 이 부회장에게 경영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는 게 부족했다”는 한 바퀴 꼰 말에 담긴 그의 편견은 가볍게라도 짚어 둬야 할 것 같다. 삼성전자가 지난 2분기 ‘세계에서 가장 이익을 많이 낸 제조업체’로 등극한 것은 여당에서 특별 축하 논평을 했을 정도로 국가적 자부심을 일깨워준 쾌거였다. TV의 소니, 반도체의 인텔에 이어 스마트폰의 애플까지 차례로 뛰어넘으며 ‘글로벌 제조업 왕좌(王座)’에 오르기까지 삼성전자 임직원들이 얼마나 험난하고 치열하며 고독한 길을 걸어왔고, 이 순간에도 걸어가고 있는지는 새삼스런 서술이 필요치 않다. 이건희 회장이 병상에 누우면서 이 부회장이 경영 최종 책임을 맡은 지 3년이 지났다. 어느 것 하나 확실하게 이룬 게 없는 기업의 경영자라면 ‘새로운 사업’에 도전해 성공하는 게 급한 일이겠지만, 전 세계 제조업 분야의 최고 강자들을 차례로 제치며 정상에 올려놓은 경영인을 시민운동가의 사견으로 재단하는 게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기업인들에게 도덕군자의 잣대를 들이대 천시하는 것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주자학적 이념에 점령당한 이 나라의 속 터지는 전통이다. ‘졸면 죽는’ 글로벌 무한경쟁 시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경영인과 기업에 “왜 흙먼지를 붙이고 일하느냐”는 식으로 단죄하고 족쳐대는데 무사할 기업은 없다.

틈만 보이면 기업들의 호주머니를 털어내려는 정치 권력과 시민단체 권력은 그 자체로 기업들의 ‘해저드’다. 정상적인 나라라면 시간을 쪼개 경영활동을 하기에도 바쁜 기업인들이 정치인들을 만나고 돈을 주는 데 시간과 신경을 쓸 이유가 없다. 정치·사회 권력과 기업의 역학관계에서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는 뻔하다. 유착이니 결탁이니 하는 죄목으로 기업들을 몰아붙이기에 앞서 ‘갑질’의 토양을 정비하는 게 순서다.

48년 전 아시아 변방의 후발(後發) 가전회사로 출발한 삼성전자가 반세기도 안 돼 세계 정상에 올라선 것은 세계 기업사에 기록될 쾌거다. 그런 기업의 경영인들에게 돌아오는 게 박수가 아닌 모멸과 수난인 현실에서 제2, 제3의 ‘삼성전자’를 기대할 수는 없다. 지난해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에 선정된 한국 기업 숫자가 2개 줄어든 15개에 그쳤다는 뉴스가 겹쳐진다.

이학영 논설실장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