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고비용 구조로 가자는 정책들
글로벌 시대 기업들의 경쟁 구도는 국가와 지역을 넘어 전 세계를 무대로 펼쳐진다. 경쟁의 의미는 다양하지만 결국 핵심은 기업들이 죽어라 노력하며 나름의 기술 투자를 통해 제품이나 서비스 품질을 제고하고 생산비를 낮추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이런 노력을 잠깐만 하고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실행해야 경쟁력이 유지된다.

소비자들은 가격에 굉장히 민감하다. 흔히 하는 “가성비가 좋다”는 말에 이 부분이 함축돼 있다. 좋은 품질의 제품을 남보다 싸게 생산할 수 있어야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으면서 생존할 수 있고, 이런 노력이 실패하면 도태되는 것이 글로벌 경쟁시대 기업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인 것이다.

이처럼 생산비용은 기업 경쟁력에서 매우 중요한 항목이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때인 2002년 독일의 ‘하르츠 개혁’이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독일은 이 개혁을 통해 고용의 유연성을 높이고 인건비 상승을 억제하거나 하향 조정할 수 있었다.

이 개혁 덕분에 독일 제품의 가성비는 훨씬 좋아졌고 기업경쟁력은 더욱 제고됐다. 독일 제품으로 수요가 몰리면서 독일은 통일의 후유증으로 인한 ‘유럽의 병자’ 수준에서 ‘유럽의 슈퍼스타’로 급부상할 수 있었다. 때마침 유럽 여러 나라가 같은 화폐를 사용하는 유로존이 출범했고 이들 국가 사이의 역내 무역이 활성화된 것도 많은 도움이 됐다. ‘병자’가 ‘슈퍼스타’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업들의 노력, 근로자들의 협조적 분위기가 어려운 개혁을 가능케 하면서 결국 ‘윈윈 게임’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런 독일의 모습에 최근 우리의 모습이 투영된다. 특히 고용과 관련한 여러 정책이 마음에 걸린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1만원 인상 등의 정책 취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임금은 이를 받는 근로자들에게는 소득이 되지만 지급하는 기업들에는 인건비 내지 생산비다. 받는 쪽만 생각하면 당연히 두 배 세 배 올려서 소득을 올리는 게 좋겠지만 지급하는 쪽을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한 푼이라도 생산비를 절약해 자신이 생산하는 제품이나 서비스 생산의 효율성을 추구하지 않으면 금방 도태될 수 있는 것이 글로벌 경쟁시대의 기업 조직이다. 이들에 대해 생산비를 덜컥 올리도록 하는 정책은 대단히 위험하다. 경쟁력이 훼손되면 조직 자체가 무너지고 임금 자체를 지급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원자력발전소 문제도 마찬가지다. 우리 경제의 강점 중 하나는 에너지 비용이 저렴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투자하는 외국 기업들도 값싼 에너지 비용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탈(脫)원전’이라는 ‘아름다운 구호’가 걱정되는 것은 이런 조치가 에너지 비용의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다. 에너지 가격 인상이 생산비 증가로 이어지면 기업들은 어려워진다. 탈원전은 생산비 부담에 대한 고려가 영 부족한 정책인 것이다.

법인세 문제도 그렇다. ‘부자 증세’ 운운하면서 법인세 인상을 이야기하지만 개인은 몰라도 법인을 부자라고 분류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법인세 인상 정책 또한 광범위한 의미의 생산비 상승을 유발해 기업의 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새 정부가 계획하거나 추진하는 정책의 조각 그림들을 모아 보면 고비용 구조가 나타난다. 고비용은 당장 저효율로 연결된다. 고비용 구조의 정착은 오랫동안 구축한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좀먹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기존 산업의 경쟁력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정책들은 우리 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부슬부슬 오는 가랑비를 계속 맞다 보면 어느새 옷이 다 젖는다. 생산비 상승이 경제의 여러 분야에서 동시다발로 진행되면 결국 ‘옷’이 다 젖는다. ‘옷’은 다 젖었는데 갈아입을 ‘새 옷’은 없다면 그 다음 시나리오는 뻔하다. 우리 경제가 고비용·저효율 구조로 인해 고통받는 상황을 막기 위한 세심한 배려와 보다 큰 그림이 매우 아쉬운 시점이다.

윤창현 < 서울시립대 교수·공적자금관리위 민간위원장 chyun3344@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