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영 칼럼] 신기술 도입 막는 '앙시앵 레짐' 타파해야
미국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은 “모든 혁명은 한 사람의 마음속에 품은 생각에서부터 비롯된다”고 했다. 18세기의 산업혁명은 제임스 와트의 집념이 응축된 증기기관에서 비롯됐고 2차와 3차 산업혁명도 각각 전기와 인터넷 등을 상용화시킨 사람들의 의지가 낳은 결과다. 한 사람의 열정이 만든 작은 변화가 확산돼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고 과거와는 전혀 다른 혁신적인 가치창출의 모델이 전 부문에 확산되면서 산업혁명으로 발전해왔다.

4차 산업혁명도 예외가 아니다. 정보기술(IT)과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융복합적인 ‘기술지진(techquake)’이 경제는 물론 사회 모든 분야에 큰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향후 10년 내에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2가 영향을 받고 고용의 60% 이상이 AI와 로봇으로 대체된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여전히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역사적 논쟁이 지속되고 있지만 신기술이 불러오는 메가트렌드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세기적 변화로 다가오고 있다.

4차 혁명의 명암은 모든 부문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자동차산업만 해도 볼보는 2019년부터 전기차만 생산하고 포드는 2020년부터 자율운행차를 보급하겠다고 한다. 물론 상당한 시간이 더 소요되겠지만 230여 년을 유지해온 가솔린 기관의 교체는 연료에서부터 생산과 부품, 애프터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자동차 연관산업에 전대미문의 파급 효과를 불러올 것이다.

고용에 미칠 4차 산업혁명의 파장은 더욱 심각하다. 단순 반복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일자리뿐만 아니라 전문직도 로봇에 자리를 내줘야 할 판이다. 이미 맥도날드는 키오스크로 주문을 받고 구글이 교수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기계가 지능화되고 학습능력이 신장됨에 따라 많은 영역에서 인간과 인간이 만든 AI가 경쟁하는 아이러니가 시작된 셈이다.

한편으로는 새롭게 창출되는 신성장산업의 일자리도 기대할 만하다. AI, 로봇, 빅데이터 등 많은 분야에서 새로운 사업모델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술혁신으로 인한 실업 대책도 필요하고, 동시에 변화를 적극 수용해 신산업을 활성화시키는 전략도 마련해야 한다. 기술 확산이 빨라질수록 사라지는 일자리 역시 더 많아질 것이므로 사회적 갈등과 정책 선택의 딜레마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제도적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과거의 기술에 고착된 경직적인 제도와 문화로는 신산업혁명의 과실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혁신을 수용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865년 영국에서 자동차가 처음 개발됐을 때 의회는 시속 2마일(3.2㎞)로 운행을 제한했다. 자동차 때문에 잃게 되는 일자리를 걱정한 포퓰리즘의 결과였지만 결국 이 규제로 신기술은 모두 대륙으로 건너가 다른 나라에서 융성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단기적으로는 일자리를 지킨 것처럼 보였지만 자동차산업을 모두 잃어버리는 우를 범한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그대로 연출되고 있다. 드론은 5개 부처에 걸친 규제로, 빅데이터는 개인정보보호 때문에, 핀테크는 금융규제를 이유로 수년째 표류해 이미 중국에도 뒤지고 있다고 한다. 기존의 기술과 관행에 고착된 제도 때문에 신기술을 적용한 사업모델이 빛을 보지 못하는 사례가 곳곳에 수두룩하다.

정부의 역할은 특정한 부문의 연구개발을 지원하기보다 경제와 교육,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혁신을 수용할 수 있는 제도 개혁에 앞장서는 것이다. 신기술의 도입을 가로막는 모든 ‘앙시앵 레짐(구체제)’을 타파하고, 신산업을 선도해 높은 부가가치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동시에 쇠퇴하는 직종에 대한 직업훈련과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신산업혁명의 메가트렌드에 적응할 수 있는 창의적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는 생태계가 조성돼야 신산업혁명이 이 땅에서 꽃을 피울 수 있다.

정갑영 < FROM 100 대표, 전 연세대 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