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논점과 관점] 남북 정상회담 조급증
산 정상을 뜻하는 ‘서밋(summit)’을 ‘정상회담’이란 외교 용어로 처음 사용한 사람은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다. 1950년 소련의 스탈린에게 회담을 제의할 때였다. 암울한 냉전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최후 담판’을 짓자는 의도에서 그런 말을 썼다는 게 정설이다.

‘서밋’이란 단어엔 긴박감이 묻어난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곳에서 정상들은 나라의 운명을 걸어야 한다. 그 결과가 정상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으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많은 지도자가 ‘정상회담 리스크’를 감수하려는 이유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이 남북 정상회담을 희망한 것도 이런 차원일 것이다. 잘하면 남북통일의 기초를 닦은 위대한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평양 땅을 밟았고, 김영삼·이명박 전 대통령은 시도했으나 수포로 돌아갔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근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의지를 여러 차례 드러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 후보자도 “필요하다면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해 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남한에 "돈 내라" 청구서 내밀어

관건은 북한을 믿을 수 있느냐다. 북한이 배신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6월 정상회담 뒤 “이제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고 단언했다. 2년도 안 돼 북한은 연평도 앞바다에서 도발을 감행한 데 이어 2차 북핵 위기를 일으켰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0월 김정일과 회담했지만 돌아온 것은 북한의 핵 실험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였다. 1994년 제네바 합의, 2005년 9·19 비핵화 공동성명 때 북한은 핵 동결 선언을 해놓고 파기했다.

북한은 지금 와서 6·15와 10·4 선언을 지키라고 남측에 요구하고 있다. 그 의도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정상회담 결과로 나온 두 선언문엔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 경협 사업이 빼곡하게 목록에 올라 있다. 전부 남측이 돈을 대야 하는 사업이다. 북한이 이 두 선언 이행을 촉구하는 것은 청구서를 들이미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면서도 “핵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고 못을 박았다. 핵은 미국과 협상 대상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핵 개발에 성공하고 미사일 위협 수위를 한껏 끌어올려 판돈을 키운 뒤 미국과 마주 앉아 많이 받아내겠다는 속셈이다.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어 체제 보장을 약속받고, 궁극적으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한·미 동맹을 파기하는 게 북한의 목표다. 남측으로부터는 챙길 것만 챙기겠다는 것이다. 평화를 거래의 관점에서 봐 온 그들의 일관된 수법이다.

핵포기 의사 전혀 없는 북한

이런데도 남측이 남북 정상회담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는 게 타당한가라는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물론 북한과 대화는 해야 한다. 다만 때가 있는 법이다. 남북 문제는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북한이 합의한다고 해서 평화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좋든 싫든 동맹국 미국과 호흡을 맞춰 나가야 하는 게 냉엄한 현실이다.

한·미 새 정부는 아직 대북정책 그림을 다 그리지 않았고, 정상회담도 앞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패만 자꾸 내보이는 것은 협상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환상은 버려야 한다. 지난 두 차례 정상회담에선 핵 문제가 빠졌고, 결과적으로 만남을 위한 만남에 그쳤다. 정상회담이 이뤄지려면 무엇보다 핵·미사일에 대한 북한의 태도 변화가 전제돼야 한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고, 국제사회가 제재에 온 힘을 기울이는데 우리만 조급해 보이는 것 같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