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GMO 표시제, 개정보다 정착에 힘써야
우리나라에서 지난 10년간 남아돈 쌀은 연평균 28만t에 달한다. 군인 60만 명이 8년간 먹을 수 있는 양이다. 해마다 창고에 이만큼의 쌀이 쌓이고 있다. 이런 상황이기에 ‘식량 위기’는 다른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50.2%에 불과하다. 곡물자급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32위를 기록했다. 쌀 자급률은 100%가 넘지만 밀 자급률은 0.7%, 콩 자급률은 9.4%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량 위기에 대한 국민 인식은 여전히 미약하기만 하다. 유엔은 2045년에는 세계 인구가 90억 명을 웃돌아 지구가 심각한 식량 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식량 위기는 경제·안보 위기이기도 하다. 2008년 극심한 가뭄이 지속되면서 인도를 비롯한 러시아, 중국, 아르헨티나 등 주요 곡물 생산국들은 곡물 수출을 제한하거나 금지했다. 그러자 곡물 가격이 폭등했고 식량 폭동으로까지 번졌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경제 불안정성이 커지고 민심이 출렁인다. 부자들보다 서민 삶이 더 힘들어진다. 이런 일은 남 일이 아니다. 여파는 고스란히 우리에게도 미친다. 2010년 출범한 한국식량안보재단은 에너지·광물자원처럼 식량자원 수출을 제한하는 ‘식량민족주의’에 대한 대비가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한다.

특히 기후 변화는 식량 위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기상 이변은 작물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세계 주요국들이 ‘식량 안보’ 차원에서 닥쳐올 수 있는 식량 위기에 다양한 방법으로 미리 대처하는 이유이다. 미국은 식량안보법을 입법했다. 유럽연합(EU) 28개국은 공동농업정책(CAP)을 펼치며 식량자급률 제고를 도모하고 있다. 일본은 해외 농업을 통한 식량자급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래 식량난 해결 방법으로 곤충 섭취, 배양육 개발, 유전자변형작물(GMO) 개발 등 다양한 대체 식량 개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작물을 수입하는 상황이기에 국제적인 식량난이 발생할 경우 식량 안보와 식량 주권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있다. 따라서 국민 기초 식량의 자급자족과 식량 증산을 위한 첨단 GMO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GMO는 인구 증가로 인한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GMO 최대 생산국은 미국이다. 미국에서는 14종류의 유전자 변형 종자가 승인돼 재배되고 있다. 2015년 기준 전 세계 주요 작물의 GMO 재배 면적 비중은 콩 83%, 면화 75%, 옥수수 29%에 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GMO가 품종화돼 재배되는 경우는 없다.

일부에서는 GMO에 대해 부정적인 주장을 펼친다. 하지만 지난해 노벨상 수상자 113명은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에 GMO 반대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GMO 소비가 인간이나 동물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례는 한 번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GMO의 안전성은 과학적 연구를 통해 세계적으로 이미 입증됐다.

우리나라도 지난 2월부터 강화된 GMO 표시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제 4개월 남짓 지났다. 그럼에도 일부 인사와 단체들은 GMO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조장하며 ‘GMO 표시제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막 시작한 마당에 또다시 관련 법률과 제도를 개정한다면 정책의 신뢰도가 훼손될 수 있다. 문제가 있다면 서서히 수정·보완하는 것이 맞을 듯싶다.

박현진 < 고려대 교수·생명공학 한국식품과학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