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한국을 떠나려 했던 자동차 부품사 회장의 하소연
“본사를 해외로 옮겨볼까 생각해봤는데, 녹록지 않더라고요….”

의외였다. 잘나가는 자동차부품 회사의 오너 회장 입에서 나온 말이어서 그랬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도 의아했다. 그는 얼마 전 국내 최대 법무법인인 김앤장 문까지 두드렸다고 한다. 한국에 있는 회사를 해외로 옮기는 방안을 자세히 따져보기 위해서였다. 그게 안 되면 국내 사업장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해외에 세운 회사만 운영하며 살 작정이었다.

얼마 후 이런 생각은 ‘없던 일’이 됐다. 우선 회사를 해외로 옮기는 절차가 너무 복잡했다고 한다. 세금 등 각종 비용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컸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40년 넘게 일궈온 회사를 접고 떠난다는 게 내내 부담이 됐다. 자식들에게 회사를 물려주려던 생각도 일단 접었다. 당장 회사 주식을 물려주면 절반을 상속세로 내야 해서다. 그럴 돈이 없었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오너 기업인이 평생 일군 회사를 해외로 옮길 생각까지 한 사연은 이렇다. 새 정부가 각종 노동 관련 정책을 추진하면서 회사에 어떤 영향이 미칠까 고민했다고 한다.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으로 인상, 근로시간 단축(주당 최대 68시간→52시간) 등이 이뤄질 경우를 가정해 계산기를 두드려 본 것이다.

그가 키운 회사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중국 유럽 등에 생산공장을 두고 있다. 국내외 임직원만 2000여 명에 달한다. 연간 매출은 8000억원이며 200억원 정도의 영업이익을 낸다. 자동차부품업계에서는 꽤 유명한 알짜 업체다. 이 회사 직원의 현재 기본급 기준 평균 시급은 7000원 정도다. 상여금과 각종 성과급 등을 합친 통합 임금 기준으로 따지면 시급이 1만7600원에 달한다. 3년 내 최저임금을 1만원(기본급 기준)으로 올리면 통합 임금 기준 시급은 2만6000원대로 뛴다고 했다. 한 해 직원 임금만 151억원씩 늘어난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게 끝이 아니다. 이 회사는 노사 협상을 통해 매년 5~7%씩 임금을 올려왔다. 결국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린 뒤 3~5년 정도 지나면 임금 인상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영업이익 대부분을 까먹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익을 낼 수 없는 회사가 된다는 얘기다.

물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 해 수백억원씩 들이던 연구개발(R&D) 비용을 줄이면 생존이 가능하다. 다만 이 역시 오래 버틸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5년 뒤 회사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이유다. 이후 술만 늘었다고 한다.

이 기업인은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일 경우엔 회사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아직 구체적으로 따져보지 않았다. 안 그래도 고급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처지인데, 기존 근로자에 대한 임금을 보전하고 추가 인력 보충까지 할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팠다고 한다.

고령의 중견기업 회장은 최근 생각을 다시 정리했다. 어차피 한국 사람인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여기서 버티는 게 맞다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위로도 보탰다. 회사를 키워온 40년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좌충우돌(左衝右突)’해왔지만, 여기까지 온 것처럼 어떻게든 회사가 굴러갈 것이라고 되뇌었다. 두 시간 동안 그의 얘기를 들은 뒤 자리를 떴다. 그의 씁쓸한 마지막 말이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그래도 5년은 버틸 수 있겠죠….”

장창민 산업부 차장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