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국민의 금융실력을 올려야 한다
한때 ‘10만 해커 양병설’이 있었다. 글로벌 정보화 시대에 정예 해커를 양성해 국가안보와 산업기밀을 보호하자는 취지였다. 다소 생뚱맞은 발상이었지만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위기나 얼마 전 랜섬웨어 바이러스 공격을 생각하면 선견지명(?)이 있는 제안이었다.

그런데 안보위기 못지않게 경제문제가 지난 대선 쟁점이었다. 이젠 전 국민의 생활용어가 된 빈부격차, 청년실업, 저성장,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와 저출산 등 어느 것 하나 쉬운 해법이 없는 이슈들이다. 대부분 구조적인 문제고 또 사안에 따라서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문제의 ‘증상’을 상당 부분 완화하거나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종합처방약’이 있다. 그게 바로 국민의 자산을 증가시키는 자산운용산업 육성이다.

한국의 개인금융 자산은 3600조원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국민연금 및 각종 연금자산, 국부펀드와 기업들의 금융자산 등을 더하면 대략 5000조원이다. 물론 부동산 자산은 제외한 금액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 천문학적 자산이 적절한 운용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펀드매니저 숫자는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을 다 합쳐 20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나마 10년 이상 된 베테랑 매니저는 20%에도 못 미친다. 이 정도 인원으로는 한국 금융자산을 제대로 운용하기에 역부족이다. 그런데 이 엄청난 자산이 지금보다 매년 2~3%만 더 높은 수익을 낸다면 계산하기 힘든 부의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당장 국민연금의 고갈 시기가 10년 이상 연장된다. 퇴직연금 수익률이 2% 더 높아지면 그만큼 노령수당이나 복지급여를 줄일 수 있고 이를 젊은 세대를 위한 재원으로 쓸 수 있다. 또 국부펀드가 좋은 수익을 내면 나라 살림이 불어나 세금을 그만큼 걷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좋은 펀드매니저를 양성하는 데는 최소 10년 이상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금융 교육은 좋은 인재 양성의 환경을 제공해준다. 사실 우리 국민 대다수가 ‘금융문맹’이다.체계적인 재테크 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금융업 종사자조차 자기 자산의 투자는 젬병인 사람이 많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금융과 재테크의 조기교육이 절실한 형편이다. 국민의 금융상품 지식이 늘어나고 눈이 높아질수록 펀드매니저의 실력도 그만큼 올라간다.

새 정부는 청년실업문제 해결 방안의 하나로 공무원 채용을 늘리겠다고 한다. 차제에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금융교육담당 교사를 배치해 조기 재테크 교육을 통해 스스로 자산을 키워나가는 방법을 배우게 하면 그만큼 정부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또 이런 것이 바로 청년들이 원하는 고급 일자리 만들기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은 산업구조상 국내 투자를 크게 늘리기 힘들다. 이제 해외 투자를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밖에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한국의 금융자산을 글로벌 유망기업에 투자해 성장의 과실을 공유하는 것이다. 가령 삼성전자가 인수합병(M&A)으로 세계 주요 정보기술(IT)업체들의 홀딩 컴퍼니가 되는 것이다. 워런 버핏이 주식 투자로 세계 최고의 재벌총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국내총생산(GDP) 증가율과 수출 증가에 목숨 거는 시대는 지났다. 한국 총자산이 내는 총수익률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됐다.

혹자는 조만간 인공지능이 펀드매니저를 대신할 것이라며 인간 매니저 양성이 불필요하다고 한다. 이는 최고의 인공지능 펀드매니저 알고리즘을 만들기 위해서도 최고의 인간 펀드매니저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간과한 단순 논리다. 그리고 어떤 업종이든 글로벌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선수층’이 두터워야 한다. 자산운용산업이야말로 소프트 파워를 키우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다.

이상진 < 신영자산운용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