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비리 재발방지의 조건

[뉴스의 맥] 방위사업 비리 척결, 거버넌스 구조 혁파에 달렸다
취임 1주일 만인 지난달 17일, 정부 부처 중 가장 먼저 국방부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은 ‘국방개혁의 조속한 실행과 방산비리 재발 방지’를 주문했다. 이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의 청와대 국방개혁팀 설치를 통한 방산비리 검토,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의 제도 개선 발언이 이어졌다. 이 와중에 군 출신 업체 대표의 가짜 윤활유 납품에 따른 헬기 등 핵심 전투용 무기의 결함, 전략안보물자인 잠수함사업에 전·현직 장교 간 감리 관련 뇌물수수 비리가 드러나면서 방산비리는 더 큰 이슈로 부각됐다. 이들은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고위 장교이면서 사관학교 선후배 관계라는 점에서 큰 충격을 줬다.

방위사업 비리 척결은 국방개혁, 방위산업 육성과 함께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 중 하나다. 공약에는 비리 처벌 형량 및 입찰 참여 제한 강화와 함께 ‘원스트라이크 아웃’ 등이 포함돼 있다. 또 방위사업청(방사청)의 독립성 강화와 함께 방위사업 추진 합리성을 강화하기 위한 민간 연구기관 참여, 방위사업추진위원회의 민간 참여 확대 등을 통한 객관성 및 투명성 제고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2006년 노무현 정부는 율곡비리(1993), 린다 김 로비(1998), 대공포 비리(2003) 등의 구조적 방산비리를 차단하기 위해 국방부로부터 방사청을 독립시켜 무기획득사업의 투명성을 확보하려 했다. 그 결과 지난 11년간 방사청은 과거의 대규모 권력형 조직적 비리 형태를 소규모 개인 네트워크형 비리로 축소할 수 있었다. 2015년 검찰 기소 건의 방위사업 비리 규모는 약 1200억원, 뇌물은 20억원 내외였으며 상당수는 가족이 연계된 개인형, 학연에 따른 네트워크형으로 파악됐다.
[뉴스의 맥] 방위사업 비리 척결, 거버넌스 구조 혁파에 달렸다
누구도 알기 힘든 혈세 누수

무기획득사업 비리의 본질적인 문제는 눈에 잘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도 않아 국민 세금이 아무도 모르게 낭비된다는 것이다. 대개 해당 군의 과다 소요·성능 및 불필요한 무기 요구와 생산 및 공급자의 원가·판매가격 부풀리기로 인해 세금이 샌다. 이 과정에서 소수 이해당사자의 도덕적 해이가 비리로 이어지고 있다. 국가 안보를 위해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는 군사기밀 보호 방침에 따른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해관계자들이 악용하고 있다.

특히 ‘사관학교 선후배 관계는 혈연보다 강해 무덤까지 간다’는 말처럼 개인적 네트워크에 따른 극소수 전·현직 부패 고급장교들의 ‘짜고 치는 고스톱’은 구조적 문제라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다. 전투 시 가장 우선시되는 군의 상명하복 조직문화가 투명성·공정성·전문성을 요하는 방위사업에까지 악영향을 미쳐 군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 방사청 인력 1650명의 45%인 750명은 군에서 파견된 인력으로 대부분은 사업 관리를 담당하고 있고 방사청장은 이들에 대한 인사권도 취약하다.

구조적 방산비리와 적폐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전문성, 투명성, 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는 민간전문사업관리기관(가칭 국방사업관리평가원)을 신설해 방사청의 무기체계 사업관리 기능을 이관할 필요가 있다. 최첨단 기술이 요구되는 무기획득사업은 전문 기술지식을 갖춘 엔지니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현재의 군인·공무원에게 그런 전문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미국 유럽 등 주요 선진국도 국방기술 및 무기체계 연구개발(R&D)을 정부가 직접 관리하고 있으나 투명성·전문성이 매우 높고, 기업들도 높은 윤리와 기술력이 밑바탕이 돼 있어 상호 간 성능, 비용 관련 담합이 없다. 다른 정부 부처들은 산업기술평가관리원(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평가관리원(미래창조과학부) 등을 운영, 국가 R&D사업 관리의 투명성과 전문성을 확보해 비리를 차단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담당자 업무의 양적·질적 증가로 인한 사업 부실화 등 효율성 문제도 지적된다. 2006년 방위력 개선비는 약 6조7000억원이었으나, 올해는 약 12조2000억원으로 11년간 82% 늘었다. 관리 인력은 개청 당시와 같은 650여 명 수준에 묶여 있어 1인당 관리 규모도 크게 증가(103억원→188억원)했다. 산업기술평가관리원의 1인당 관리 규모는 70억원 내외다. 앞으로 전시작전권 회수에 따라 방위력 개선비가 대폭 늘어나면 그 부담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 사업관리 어려운 순환보직

또 핵심 보직인 사업관리 팀장급 대부분은 2년 내외의 순환보직이다. 최대 20년이 소요되는 초장기 사업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무기획득사업의 금액과 기간, 방식을 결정하는 선행연구기관은 객관성과 고도의 전문성, 독립성이 요구된다. 타당성 검토와 정책 개발을 지원하는 독립적 싱크탱크를 신설해 17조원의 사업비를 지출하는 방사청에 대한 효과적 정책 제시로 비리를 예방하는 ‘사전 주치의’ 기능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국방비 증액에 대한 문 대통령의 ‘국내총생산(GDP) 3%’ 발언과 “국방 예산을 연 7~8% 늘리겠다”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계획을 근거로 보면 현재 정부 예산의 10%(2017년 40조3000억원) 수준인 국방비는 문재인 정부 임기 말에는 13%인 약 60조원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현재보다 50% 증가한 것으로 상당 부분은 전작권 회수용 무기획득사업에 배분될 것으로 보인다.

무기획득 예산 증가는 대선 공약인 방위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로 연계돼야 한다. 수십 년간 지속된 반시장적 적폐 해소와 더불어 선진국처럼 민군융합형 R&D로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해야 한다. 20%에 불과한 중소기업의 방위산업 생산 비중을 50% 선으로 늘리고 우수 중소·벤처기업을 적극 발굴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15.5%에 불과한 방산수출 비중을 35~40%로 높인다면 현재 제조업 고용률의 1%에 불과한 3만8000명의 방산 일자리를 10만 명 선으로 늘릴 수 있다. 국방 예산 비중이 연방 예산의 15%이며, 제조업 인력의 10% 이상이 방위산업체에서 일하는 미국은 경기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내년도 국방비를 10% 증액했다. 이스라엘도 방위산업체 일자리가 제조업 전체의 14% 이상을 차지한다.

안보·방산·일자리 선순환 정착을

방산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산업정책 관점에서 ‘안보→방산→경제→일자리 창출’의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하며, 선행연구 등 타당성 검토 시 일자리·민군 겸용·수출·부품 국산화 등 경제적 요소를 반영해야 한다. 2022년 방사청의 사업비 규모는 30조~35조원으로 예상된다. 초대형 부처인 방사청 지원 및 방산-경제-일자리 간 정책 연계 강화를 위한 ‘방산비서관’ 직제신설도 시급해 보인다. 일자리 창출은 아버지들의 의무이자 우리 자식들의 권리다. 문 대통령 말대로 “안보가 곧 경제이며 민생”이다.

안영수 <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