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서울로 7017, 정말 괜찮은가
서울 청운동의 윤동주문학관은 용도 폐기된 상수도가압장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곳으로 유명하다. 가압장의 물탱크 윗부분을 개방해 하늘이 보이는 전시실로 활용한다. 지난 25일 이곳에서 열린 시낭송 토크콘서트는 그야말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다 보고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도시의 낡은 건물이나 장소, 낙후한 지역에 새로운 기능과 디자인을 입혀 되살리는 도시재생은 이처럼 매력적이다.

지난 20일 개장한 ‘서울로 7017’은 낡은 서울역 고가도로를 도심의 보행로로 재탄생시켰다고 해서 크게 주목받았다. 개장 다음날부터 세 차례 이 길을 걸어봤다. 아침 출근길에, 점심 식사 후, 해질 무렵으로 시간을 달리하며 걸었다. 개장 초반인 데다 서울시가 워낙 열심히 홍보를 해서인지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그럴만도 했다.

회색 시멘트 일색의 보행도로

검은색 아스팔트와 잿빛 인도를 걷다가 서울로에 접어들면 뭔가 다르려니 했던 기대는 처음부터 깨졌다. 남대문시장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서울로에 들어서니 온통 회색이다. 중림동, 만리동 쪽에서 진입하는 철제 계단과 빔도 모두 회색이다. 고가의 바닥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멘트 포장이다. 총 길이 1024m, 폭 10.3m의 고가도로에 시멘트를 새로 깔고 그 위에 크고 작은 회색의 원통형 시멘트 화분을 여기저기 배치했다. 한마디로 삭막했다. 바닥도 화분도 온통 회색이라니….

화분에 심어 놓은 나무들은 처량할 정도였다. 벌써 녹음이 울창해진 다른 곳의 나무들과 달리 나뭇잎이 빈약했다. ‘박원순나무’라고 이름을 붙여 놓은 느티나무를 비롯해 중국단풍, 복자기, 단풍나무, 고로쇠나무 등 대부분의 나무들이 그랬다. 쪽동백나무의 잎은 손으로 수를 꼽을 정도였다. 쪽동백 네 그루 중 두 그루는 잎이 다 말라버렸다. 매자나무도 고사 직전이고, 억새는 벌써 가을 풍경이다. 그나마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모감주나무와 장수만리화, 수국, 미스김라일락 등과 소나무, 잣나무, 주목 같은 침엽수 정도였다.

대대적 재(再)재생이 필요하다

더 답답한 것은 시멘트 바닥이다. 동행한 60대 초반의 남성은 등산 마니아인데도 서울로를 다 걷고 나니 무릎이 아프다고 했다. 걷는 재미도 느끼기 어려웠다. 불규칙하게 놓인 원통형 화분은 어떤 디자인의 느낌을 주기보다 장애물에 가까웠다. 서울시가 참고했다는 뉴욕의 하이라인파크가 이런가. 맨해튼의 폐고가철도 위에 공원을 조성한 하이라인파크는 겨울만 빼면 늘 푸른 정원이다. 사람들이 여기서 담소를 나누고, 도시락을 먹고, 일광욕을 하는 이유다.

‘사람 중심 도시재생의 시작’ ‘서울 한복판의 숨쉬는 길’. 서울시의 홍보 문구는 거창하다. 이에 걸맞은 ‘재(再)재생’이 필요하다. 컬러와 디자인, 콘텐츠를 새로 입혀야 한다. 보행자를 위해 바닥에 나무데크나 친환경 탄성 소재를 깔았으면 좋겠다. 구간별로 바닥 소재를 달리하며 디자인을 입혀보면 어떨까. 전통적인 느낌의 화강암 소재로 화분을 꾸며보면 안 될까. 장미나 담쟁이, 나팔꽃, 호박, 수세미 등의 덩굴식물로 터널을 만들면 요즘 같은 땡볕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동네 조경업자가 해도 이보다 낫겠다”는 혹평을 계속 듣지 않으려면 말이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