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출발부터 ‘인사 5대 원칙’(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전입, 논문 표절 관련 인사는 공직 배제)에 발목이 잡히며 진퇴양난에 빠진 모습이다. 공직 후보자들이 위장전입 등 인사원칙에 저촉된다는 논란이 가열되면서 검증에 대한 의구심마저 깊어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내부에서 인사 원칙을 두고 자의적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식이면 대통령이 스스로 국민 앞에 공언했던 원칙에 대한 자기 부정이 되고 만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인사원칙 위배 논란이 제기됐을 때 “선거 캠페인과 국정운영이라는 현실의 무게가 같을 수 없다”고 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상황 논리로 피해나갈 작정이었다면 처음부터 원칙 운운하지 말았어야 했다. 대통령이 “제가 공약한 것은 그야말로 원칙이고, 실제 적용에서는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고 한 것도 그렇다. 청와대는 ‘투기성 위장전입 검증’, ‘청문회가 도입된 2005년 7월 이후 위장전입자 배제’ 등의 기준을 내놨고, 여당에선 “위장전입의 질이 다르다”며 거들고 있다. 여야가 바뀌었다지만 자의성의 극치다.

경영학에 ‘표준의 조정’이라는 말이 있다. 엔론의 몰락을 가져온 분식회계 사건이 던진 교훈이다. 회계법인 아서앤더슨은 자신들이 제시했던 표준을 조금씩 조정해 가며 엔론의 부정을 눈감아 주거나 편법까지 제공했다. 문제가 터지자 관행이었다며 변명을 늘어놨다. 그러다 아서앤더슨은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며 속된 말로 ‘내 편’이라고 이중잣대를 적용하다 위기에 몰리거나 망한 기업이 한둘이 아니다. 대우조선 분식회계도 마찬가지다.

정부도 다를 게 없다. 원칙이라고 했으면 준수해야지 ‘표준의 조정’으로 피해가려 하는 것은 정도(正道)가 아니다. 특히 시장경제 파수꾼이라는 공정거래위원장 자리는 더욱 그렇다. 후보자가 제기된 각종 불공정거래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면 취임 후 어떻게 공정을 말할 수 있겠나.정부는 이제라도 원칙을 지키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이대로 가면 국정운영의 동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