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용 칼럼] 세상은 교과서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파킨슨 법칙’은 영국의 역사·경제·정치학자인 시릴 파킨슨이 제시한 사회생태학 법칙이다. 파킨슨은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에 “공무원 수는 업무량에 관계없이 증가한다”는 파킨슨 법칙을 발표해 유명해졌다. 공무원의 조직과 운영이 비합리적인 관행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는 경험적 사실을 분석한 것이다. 1957년 책으로 출간돼 공산권에서도, 외환위기로 기업이 위기에 내몰리던 한국에서도 읽혔다. 인사나 경영 혁신을 담당하는 관리자들 사이에서는 필독서로 권해지는 책이다.

그 후 그는 “지출은 수입만큼 증가한다”는 두 번째 파킨슨 법칙을 발표했다. 이 법칙은 “세금을 올릴 수 있는 한 공무원 숫자는 무한정 늘어날 것”이라는 내용이다. 파킨슨은 이들 법칙 외에도 사회 생태계에 관한 10여 개 법칙을 주창했다. 특히 역사, 경제, 사회생태학 분야에 60여 권의 저서를 남긴 그의 관료제에 대한 예리한 분석은 2차 세계대전 동안 영국 해군의 사무원으로 근무한 경험이 바탕이 됐다.

영국 해군 및 식민지성에 대한 그의 관찰은 지금도 회자될 정도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14년 영국 해군의 주력함은 62척이었으나, 전쟁이 끝난 14년 뒤 군함 수는 3분의 1로 줄었고 해군 수도 10만 명에서 30%가량 줄었다. 그런데도 해군성 공무원 수는 3600명으로 80%가량 늘어났다. 2차 세계대전 직전인 1935년 8100명이던 영국 해군성 공무원 수는 전쟁이 끝난 약 20년 후인 1954년에는 3만3800명으로 4.2배 늘어났다.

순수 행정기관인 식민지성에 대한 파킨슨의 조사는 더 눈길을 끈다. 2차 세계대전 중인 1943년께에는 전성기에 비해 식민지를 많이 잃었고 그 후 잇따른 독립으로 식민지 수는 계속 감소했다. 그러나 식민지성 공무원 수는 1935년 370명, 1943년 820명, 1947년 1140명, 1954년 1660명으로 약 20년 동안 4.5배 증가했다.

파킨슨은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 공무원들의 승진하려는 심리적 욕구를 들었다. 승진하기 위해서는 부하 직원 수를 늘리고 조직을 확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조직원이 늘면 이에 따른 일들이 늘어나고 조직 규모도 점점 더 커져 관리자 자리는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로마가 최전성기였던 180년부터 쇠망의 길로 들어섰다고 말한 바 있다. 세계 최초로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1800년대 초반부터 100년에 걸쳐 ‘팍스 브리태니커(Pax Britannica)’를 구가하던 대영제국조차 최전성기에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쇠퇴해 가는 현상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가로 꼽히는 로마와 영국도 흥망성쇠라는 역사의 흐름을 비켜 가진 못했다.

여기서 우리는 국가든 기업이든 흥망성쇠를 반복한다는 교훈을 얻는다. 흥망성쇠의 역사적 흐름과 법칙은 국가, 기업뿐만 아니라 가문(家門)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이는 권력과 부에 대한 지나친 탐욕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 명심해야 할 역사적 교훈은 쇠퇴가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에서 생성된 망국의 바이러스에 의해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기업도 잘될 때가 가장 위험하다지 않은가. 자만은 현실에 안주하게 해 위기감을 잃으면서 미래 대비를 못하게 하는 요인이다. 잘될 때 위기감을 갖고 관리·혁신하지 못해 전성기 이후 나락으로 떨어진 세계적 기업은 수도 없이 많다. 조직의 비대화와 그로 인한 관료제 폐해는 그래서 더 무섭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금 파킨슨의 책 서문 대목이 귓전을 맴돈다. “학생, 교사 또는 역사, 정치, 시사 관련 교재 편집자 같은 이들에게 세상이란 만사가 합리적으로 이뤄지는 곳 같을 것이다. 국민은 자유 의사에 의해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가장 유능하고 총명한 인물이 장관이 된다든가, 또 주주가 중역을 선출하고, 그 중역은 유능한 사람에게만 부장·과장 자리를 준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그러나 험한 세파에 시달리며 살아 온 사람들에게 이 같은 생각은 한낱 웃음거리일 뿐이다.”

윤종용 < 전 삼성전자 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