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깨우는 한시] 공산무인(空山無人) 수류화개(水流花開)
선인들은 물소리를 네 가지로 나눴다. 폭포성(瀑布聲)은 물이 떨어질 때 나는 소리며, 유천성(流泉聲)은 시냇물이 흐를 때 소리다. 탄성(灘聲)은 여울물이 질 때의 소리며, 구회성(溝澮聲)은 도랑물이 흐를 때 소리다. 같은 계곡물일지라도 그 물은 계절과 위치에 따라 갖가지 소리를 내기 마련이다. 사람이 듣거나 말거나 제 때에 자기소리를 낼 뿐이다. 그럼에도 오가는 사람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물소리를 듣고서 이런저런 이름을 붙인 것이다.

송나라의 동파 소식(蘇軾, 1036~1101)은 동림상총(東林常總, 1025~1091)선사가 인간소리뿐만 아니라 자연의 언어까지 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한 말을 듣고 크게 깨쳤다. 어느 날 폭포소리를 듣고서 ‘계곡의 물소리가 유창한 설법을 하고(溪聲便是廣長舌) … 밤이 오니 팔만사천 대장경이 되는구나(夜來八萬四千偈)’라는 오도송을 남겼다. 신라의 고운 최치원은 경남 합천 가야산 계곡의 탄성(灘聲)을 들으며 ‘시비의 소리가 귀에 들릴까봐(常恐是非聲到耳) 일부러 흐르는 물로 산을 둘러싸게 했네(故敎流水盡籠山)’라는 시를 돌에 새겼다. 동파와 고운 선생은 같은 물인데도 각각 필요에 따라 용도가 달랐다. 하긴 성 주변의 방어용 인공물길인 해자(垓子)조차도 두 얼굴이다. 밖에서도 들어오지 못하지만 안에서도 마음대로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절집은 계곡 곁의 누각에 침계루(枕溪樓)라는 현판을 달았다. 계곡을 베개삼아 잘 수 있는 집이기 때문이다. 초저녁의 작은 물소리는 밤이 깊어지면서 더 크게 들린다. 하지만 물소리는 그대로다. 며칠 머물다 보면 그 소리에 익숙해지고 나중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묵계(溪)가 된다. 그때는 사람이 있어도 없어도 빈산(空山)일 뿐이다. 송광사 법정스님이 즐겨 사용하던 ‘수류화개’의 원문은 소동파와 황정견(黃庭堅, 1045~1105)의 시문으로 만날 수 있다.

원철 < 스님(조계종 포교연구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