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황 회복 기대감 커지는 조선해양

[뉴스의 맥] '수주절벽' 벗어나는 조선, 고부가선 경쟁력 더 높여야
일자리 창출이 가장 중요한 국정과제가 되고 있다. 조선해양산업은 구조조정 탓에 대규모 실업 문제를 촉발했지만 세계 시장이 회복 기조로 전환할 때는 가장 빨리, 가장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산업이기도 하다. 올 4월 기준 월 단위 수출이 71억달러를 넘는 사상 최대 실적을 보인 데 이어 총 34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12척)를 수주해 국가별 수주량 1위를, 그것도 세계 선박 발주량의 약 45%를 차지했다는 기사들은 조선해양시장 회복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이고 있다. 그러나 희망을 갖기엔 좀 이른 것 같다.

수출은 호주 가스전 개발 및 생산에 필요한 세계 최대 규모 해양플랜트 등을 인도한 결과였고, 최근 수주량 1위도 그간의 실적과 비교하면 그리 큰 이슈였다고 할 수 없다. 물론 자세히 살펴보면 최근 수주 실적에서 한국 조선해양산업의 저력을 엿볼 수 있다. 우리는 자국 선사의 노후 선박을 친환경 선박으로 교체하면 1GT(총톤수)에 1500위안(약 30만원)을 지원하는 중국처럼 정책적으로 창출된 많은 내수 물량이 없었고, 세계적 규모의 해운산업이 자국 조선업체에 꾸준히 선박을 발주해온 일본처럼 높은 내수 비중의 울타리도 없는 상황에서 조선업체 자체의 경쟁력만으로 수주한 물량이라는 점에서다.

국내 조선해양산업은 아직 배타적인 경쟁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올 3월 말 금액 기준 선종별 수주 잔량 구성을 보면 우리가 해양플랜트와 LNG선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을 제외하면 한·중·일의 건조 선종 포트폴리오가 상당히 비슷해졌음을 알 수 있다. 그 배경을 들여다보면 중·일 양국의 정책적 수요와 내수 울타리 영향이 그대로 드러난다. 수주 잔량의 50% 이상을 벌크선으로 채우던 중국과 일본은 2015년부터 벌크선 시장이 크게 위축되자 발주 공백을 자국 발주 초대형 컨테이너선과 LNG선으로 채웠다. LNG선과 1만5000TEU(1TEU는 길이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 이상 극초대형 컨테이너선은 일본의 경우 전량 자국 선사 발주 물량이다. 특히 쇼에이키센 선사는 세계 최초로 2만TEU급 컨테이너선을 자국 이마바리조선에 발주했다. 중국은 자국 선사 간 합병으로 세계 4위 규모로 부상한 COSCO쉬핑에서 극초대형 컨테이너선 대부분을 발주했다.
[뉴스의 맥] '수주절벽' 벗어나는 조선, 고부가선 경쟁력 더 높여야
수급균형 찾아가는 선박시장

수주 잔량으로 볼 때 경쟁국들이 경쟁 외적 요인의 도움으로 고부가가치선 비중을 높였으니 자력으로 수주 물량을 확보한 한국의 경쟁력이 여전히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일도 자국 물량이지만 건조 경험이 쌓이면서 한국이 주도하던 고부가가치선 시장에서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조선해양시장은 서서히 회복될 전망이다. 선박 시장은 선복 과잉과 물동량 증가 부진으로 침체일로를 걷던 해운 부문이 발주량 조절과 저효율 선박 해체를 통해 수급이 균형을 찾아가면서 운임 및 용선료가 상당히 회복됐다. 해양플랜트 시장도 오일 메이저의 비용 절감 노력 등으로 에너지 개발 프로젝트별 손익분기점 유가(油價)가 많이 내려간 것으로 나타나면서 중단됐던 프로젝트들이 서서히 재개되고 있다.

조선해양산업은 국내 주력 산업 가운데 생산거점을 국내에 집중하고 있는 대표적인 산업이다. 대부분 주력 산업이 해외 수요를 찾아 또는 생산비를 낮추기 위해 생산거점을 해외로 옮기고 있다. 가전과 휴대폰은 이미 80% 이상을 해외에서 생산하고 있고, 자동차도 해외 생산 비중이 계속 높아져 50%를 넘어설 전망이다. 생산거점을 해외로 옮기면 해당 업체 수익구조는 개선되겠지만 국내 일자리와 부가가치는 크게 줄어든다. 조선해양산업은 한진중공업만 생산부문의 상당 부분을 필리핀으로 옮겼을 뿐 전체적으로 해외 생산 비중이 10%를 밑돈다. 따라서 생산 증가와 비례해서 창출되는 일자리와 부가가치가 국내에 잔류한다.

그러면 지금과 같이 어려운 시기를 잘 헤쳐나가 정상화된 시장에서 제대로 수주 전략을 펼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형 조선업체는 꾸준히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제품 차별화를 해 나가야 한다. 후발 경쟁 업체들과 질적인 격차를 유지해야 양호한 매출 및 수익구조를 보전할 수 있다. 선박은 국제해사기구(IMO)나 해당 선급에서 규정한 기준을 적용, 대량 화물을 가장 값싸게 운송할 수 있도록 건조하면 되기 때문에 다른 산업 제품과 달리 질적 차별화 여지가 크지 않다. 그러나 제품 차별화의 한 영역으로 ‘친환경 스마트 선박’이 있다. 화주와 선주의 비용 절감 및 안전에 대한 니즈를 상당 부분 충족시킬 수 있고 후발업체와의 간격도 더 벌릴 수 있는 영역이다. 지금과 콘셉트는 약간 다르지만 7년 전쯤 세계 최초로 지능화한 스마트 선박을 개발하고 인도한 실적이 있는 한국이기에 가능하다고 본다.

노후 상선 교체 등 지원 필요

조선산업에서 선가(船價)가 바닥일 때 생존을 위한 전략은 변동비에 고정비 일부를 회수할 수 있으면 손실이 나도 수주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채권금융기관의 가이드라인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벌크선, 탱커 등 범용 선박을 중심으로 수주해야 하는 중소·중견업체는 중국 업체와 힘겨운 경쟁을 해야 하고, 수주해도 선수금 환급보증(RG) 발급이 까다로워 계약이 무산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RG 발급 실패로 국내 중소·중견 조선업체가 수주를 놓치면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갖고 있던 MR(2만~5만t급 석유·화학제품 운반선)·LR(5만~8만t의 파나막스급 탱커)급 탱커시장의 상당 부분이 중국, 일본 업체에 넘어갔다. 아쉽지만 그것이 시장 논리라면 할 수 없다. 다만 정책적으로 △노후 관공선 및 연안여객선을 친환경 선박으로 교체하고 △선박펀드를 활용해 발주하며 △노후 상선의 신조(新造) 교체 지원 등을 신속하고 지속적으로 추진해 중견·중소 조선업체의 생존을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

기자재 업체, 제품 다각화해야

국내 중소·중견 조선업체가 무너지면 범용 선박용 기자재에 집중해온 기자재 업체의 생존이 어려워지고, 기자재 업체의 기반이 무너지면 대형 조선업체의 경쟁력 유지도 어렵다.

중소 조선업체의 경우 발주량이 10년 평균 규모에 크게 못 미치는 현 상황에서 건조 선종을 차별화하거나 특정 선종에 특화하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신조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비용 절감 및 생산성 제고가 가능한 선종 특화 전략이 유효할 것으로 예상한다. 기자재 업체도 현재 범용 선박 기자재 중심의 제품 구조를 다각화하는 동시에 신조, 개조 및 수리 수요 등으로의 연계가 가능한 해외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해야 한다.

홍성인 <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