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강한 '미텔슈탄트'를 만들려면
독일은 ‘미텔슈탄트(중견·중소기업)’의 나라다. 벤츠 BMW 지멘스 등 대기업도 있지만 포천 500대 기업에 드는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중견·중소기업은 강하다.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에 따르면 전 세계 2734개 ‘히든챔피언(글로벌 강소기업)’ 중 47.8%인 1307개가 독일에 있다.

독일 기업을 연구하기 위해 해마다 수많은 정치인 관료 연구원이 독일로 향한다. 새 정부 출범 후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게 분명하다. 이들이 던지는 질문은 대개 “개별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핵심정책은 무엇인가”로 요약된다. 하지만 답변은 뜻밖이다. “그런 정책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독일엔 법적으로 ‘중소기업’이라는 구분 자체가 없다. ‘히든챔피언’은 헤르만 지몬이 만든 용어이고, 통상적으로 쓰이는 ‘미텔슈탄트(종업원 500명·매출 5000만유로 미만의 기업)’는 본에 있는 중소기업연구소가 정한 기준일 뿐이다.

치열한 경쟁속 생존하는 게 '힘'

그런데도 독일 기업은 왜 강한가. 핵심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란다는 점이다. 경쟁력이 없으면 도태된다. 완성차 회사는 협력업체를 ‘키우는’ 게 아니라 ‘시장원리에 따라’ 대우한다. ‘갑을관계’도 없지만 ‘특별대우’도 없다.

독일도 중견·중소기업의 연구개발을 지원하지만 어디까지나 ‘연구조합’을 통한 공동 개발사업이나 ‘산·학·연 클러스터’ 중심이다. 전체 기술 수준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기업이 국제경쟁력을 가지려면 기업 스스로의 노력만으론 부족하다. 사회 인프라가 중요하다. 대표적인 게 인력·기술·자금이다. 독일은 국가 전체가 나서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준다. 실업계고와 직업학교를 통해 생산직 인력을 충분히 공급한다. 이들이 도제와 마이스터로 자라면서 ‘메이드 인 저머니’를 이끄는 첨병이 된다. 대졸 실업자가 넘쳐나고 중소기업은 인력난에 허덕이는 한국과는 딴판이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 우선해야

연구개발도 효율적이다. 응용기술연구소인 프라운호퍼는 연구소가 개발한 것을 기업에 제공하는 게 아니라, 기업이 원하는 것을 개발해준다. 시장을 잘 아는 것은 기업이기 때문이다.

독일은 국가 자체가 거대한 연구개발 조직이다. 프라운호퍼연구소가 67개가 있고,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막스플랑크연구소는 80곳이나 있다. 거대과학이나 미래기술 등을 연구하는 헬름홀츠와 라이프니치연구소도 곳곳에 포진해 있다. 이들은 노벨 물리·화학상 수상자를 40명이나 배출한 괴팅겐대 등 대학과 협력해 연구개발에 나서고 그 결과물을 산업 발전 원동력으로 연결시킨다.

금융회사는 담보보다 기업의 기술력, 사업성, 신용을 감안해 돈을 대준다. ‘관계형 금융’이다. 이런 신뢰관계가 있기에 글로벌 금융위기 때 독일 은행들은 중소기업 대출을 늘렸다. 기술력이 뛰어나도 담보가 없으면 대출받기 힘든 한국의 현실과는 차이가 있다.

새 정부가 출범했다. 수많은 공약도 제시됐다. 중소기업정책이 어떻게 변할지 300만 중소기업들이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표를 얻기 위한 공약과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은 구분돼야 한다. 정책 목표는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여야 하고, 실천 방안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과 ‘시장과 경쟁의 원리’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강한 중소기업을 만드는 일은 더욱 멀어질지도 모른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