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공정성·포용성이 노동개혁의 핵심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 불황으로 실업이 급증했다. 엄격한 해고규정 탓에 임시직 고용이 늘고 일자리 양극화가 심해졌다. 평생고용을 근간으로 하는 노동법제로 인해 근로조건 조정이 어렵고 취약 근로자의 고용 불안은 심해졌다.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얘기다.

상황이 우리와 판박이인데 차이도 있다. 이들은 노동시장 개혁을 실행에 옮겼다. 2012년 스페인은 매출이 3분기 연속 줄면 경영상 해고가 가능하도록 정규직 보호를 완화하되 해고 전에 ‘재배치 의무’를 신설하고 근로자에게 사내훈련 권리를 부여했다. 근로조건 조정이 쉽도록 단체협약 시스템도 바꿨다. 2년도 지나지 않아 성장률이 플러스로 돌아섰고 실업률이 19%대로 5%포인트 낮아졌다. 이탈리아는 2015년 노동법을 개정해 해고비용을 낮추는 한편 정규직 채용 시 정부가 사회보험료를 3년간 부담했다. 개혁 후 고용률이 4%포인트 올랐고 청년 실업률은 5%포인트 떨어졌다. 2016년 프랑스는 노동법을 개정했다. 해고 요건을 완화하고 근로시간 상한을 늘리는 한편 계절노동자 등 취약 근로자 보호를 강화했다. 이들 나라에서 개혁으로 고용 양극화가 고쳐졌는지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옳은 선택이었다는 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가다.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각한 한국에서도 개혁 필요성에는 대부분 공감하지만 시각에 차이가 있고 신뢰가 부족하다 보니 개혁이 무위에 그치고 있다. 정규직이 과보호되는 가운데 비정규직과 협력업체 부담이 커지고 있다. 기업은 정규직 채용과 국내 투자를 꺼리고, 청년은 끝없는 스펙 쌓기와 일자리 찾기에 내몰리고 있다. 노동시장이 나쁜 균형에 빠져 있는 사이 차세대 생산혁명과 세계화의 파괴적인 힘이 일자리의 미래를 흔들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초기에 개혁을 위해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 대립적 시각을 봉합하는 차원을 넘어 어떤 개혁방안이 더 많고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평등한 노동 기회와 공정한 혜택을 보장할지를 기준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성장, 분배, 삶의 질 논의의 한가운데 노동이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노동개혁은 포괄적인 경제사회정책 패키지의 일환으로 접근해야 한다. 노동만 분리 논의해서는 실효를 거두기 어려우며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처럼 일방이 유리한 것만 취하게 해서도 안 된다.

실타래처럼 엉킨 노동 현안들은 공정성, 포용성, 투명성의 원칙 아래 미래지향적으로 풀어야 한다. 후진적인 노동제도와 관행을 공정하게 고치는 데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 모든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보호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다른 나라 사례처럼 유연안정성이 가야 할 방향일 것이다. 정규직 보호를 국민이 납득할 수준으로 합리화하는 한편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적용 등 근로자 간 차별을 시정하고 취약 근로자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 고용 조정이 어려울수록 생산성 기반의 직무급 등 근로조건의 유연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유연화의 부담을 국가와 사회가 함께 지도록 재교육 기회와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하며, 포용적 노동시장을 만들기 위한 기업 측 노력도 이끌어내야 한다. 낮은 노조가입률을 감안할 때 사회적 논의기구의 대표성도 높여야 한다. 비정규직과 청년 등의 목소리가 반영되고 투명하게 논의되는 구조라야 한다. 종국에는 노동개혁의 성공 여부는 대부분 근로자의 소득과 근로조건 개선으로 귀결되는지에 달려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노동 문제는 이해가 첨예하고 풀기도 그만큼 어렵다. 그러나 대응이 더딜수록 비정규직의 설움과 청년의 한숨은 깊어진다. 비정상이 더 심해지고 못 버틸 상황까지 밀려 시장에 의해 개혁당하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윤종원 < 주 OECD 대사 jwyoon15@mofa.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