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무언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판사로서 30년 가까이 많은 사건을 다뤘다. 대부분 사건의 당사자는 본인의 억울함만 호소한다. 심지어 법이 없다면 살인 충동까지 느낀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 대처할 몇 가지 방법이 소송 당사자나 국민 모두에게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둔필승총(鈍筆勝聰). 육하원칙에 입각해 모든 사실을 시간 순서에 따라 적는다. ‘기록하는 자 생존한다(적자생존)’는 말도 있다. 단, 진실해야 한다. 모든 일에는 원인 없는 결과가 없다. 작은 원인이라도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지피지기(知彼知己). 상대방 주장을 보고 사실에 입각해 냉철한 분석을 한다. 그 분석에 따라 자신의 주장을 정리하고 적절한 반박 증거를 수집한다. 상대 주장을 잘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상대편과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본다. 상대편 주장에 상당 부분 논거가 있다면 긍정적인 자세로 협상해야 한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잘못을 피할 수 있다.

호질기의(護疾忌醫). 누구라도 자기 일이 되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따라서 믿을 만한 전문가로부터 도움을 받는 일을 피하거나 사태를 숨길 필요가 없다. 질병과 마찬가지로 어떤 어려움도 소문을 내야 해결할 방도가 나타난다.

변론주의(辯論主義). 재판장은 당사자 주장의 범위 내에서만 판단한다. 법관은 경기장 안에서 호각을 부는 심판이지 선수가 아님을 기억하자. 선수 스스로 노력해 경기를 이기도록 진심을 다해야 한다. 재판에서는 법관을 논리와 증거로 설득하면 이기고, 그 설득에 실패하면 진다.

적선지가(積善之家). 법적 분쟁이 지속되면 삼세판만 고집하지 말고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조기에 협상과 화해로 끝내는 것이 최상의 길임을 명심한다. 형사 문제가 되면 조기 합의가 사태 해결의 핵심이다. 억울해도 불법적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다. 법의 틀 안에서 해결하는 것이 최상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 예외가 간혹 있지만 모든 사건은 진실한 측이 승리한다는 것에 믿음을 가져야 한다. 매사에 부정적인 선수보다 긍정적인 선수가 경기에서 승자가 된다.

사실 위 방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선한 의지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비가 올 때 상대방에게 우산을 씌워주면 어깨는 비록 젖을지 몰라도 큰비는 피하게 된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결과이고 미래의 원인이라는 말이 있듯 어려움이 닥친 순간 상생의 씨앗을 심는다면 언젠가 분명 원하는 열매를 얻을 거라 믿는다.

강민구 < 법원도서관장 fb.me/KANGMK77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