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깨우는 한시 (32)]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삼계개고아당안지(三界皆苦我當安之)
[생각을 깨우는 한시 (32)]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삼계개고아당안지(三界皆苦我當安之)
아기 붓다(Buddha·석가모니)가 태어난 즉시 일곱걸음(七步) 후에 외쳤다는 육성이다. 뒷날 시로 문자화된다. 왜 하필 일곱 걸음일까? 2600년 전 인도에서 ‘일곱’은 어떤 의미일까?

탁발도 칠가식(七家食)이다. 일곱 집을 순서대로 밥을 빌었다. 그래서 인심이 고약한 집도 건너뛸 수가 없다. 아무튼 일곱을 고수했다. 당시에는 7진법을 한 단위로 삼았다는 현대식(?) 설명이 뒤따랐다. 당나라 때 관계지한(灌溪志閑, ?~896)은 일곱 걸음 후 선 채로 임종했다고 최초의 금속활자본 《직지(直指)》는 기록하고 있다. 붓다는 일곱 걸음 후에 2행 16글자를 남겼지만 지한선사는 생을 마감하는 일곱 걸음 후에도 한마디도 남기지 않았다.

일곱 걸음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다. 위진남북조 시대 조조(曹操, 155~220)의 후계자는 조비(曹丕, 187~226)와 조식(曹植, 192~232)이다. 두 사람의 권력갈등 속에서 형(조비)은 동생(조식)의 생사(生死)를 담보로 시를 지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단 일곱 걸음 안에 끝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콩대를 때서 콩을 삶으니(煮豆燃頭) 솥 속의 콩은 울고 있다(豆在釜中泣). 본래 한 뿌리에서 나왔건만(本是同根生) 어찌 이리도 급하게 삶아대느뇨(相煎何太急).” 권력이란 형제간에도 나눌 수 없는 영역이다. 하지만 시 한편은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졌기에 형은 반성의 눈물을 흘렸다. 하늘 아래 쫓기지 않는 명문이란 없다고 했던가. 훗날 ‘칠보시(七步詩)’라는 이름을 붙였다.

붓다의 탄생게(誕生偈)가 ‘칠보시’의 원조다. 모든 이의 괴로움을 없애려는 노력과 공덕을 찬탄하기 위해 ‘부처님오신날’ 집집마다 골목마다 연등을 내걸었다.

신라 이후 1700년의 전통을 지닌 무형문화재 ‘연등회’의 시작을 알리는 점등식을 12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었다.

원철 < 스님(조계종 포교연구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