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재정지출, 철저한 효과 분석 전제돼야
경기활성화를 위한 재정의 역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에서 통화정책은 대폭 완화됐다. 반면 재정정책은 주로 긴축적이었지만 2015년 중립적 기조에 이어 지난해부터는 다소나마 확장적인 정책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도 미국, 중국, 일본 등에서 인프라 확충을 위해 국내총생산(GDP)의 1.0~2.5%에 이르는 재정투자가 계획되고 있다.

이런 흐름의 변화는 장기적인 차원의 정부 역할 변화로도 설명된다. 1980년대 이후 정부보다는 시장의 기능을 중시하는 정책기류가 확산되면서 통화정책이 상대적으로 중시돼왔다. 최근 들어서는 세계화로 소득불평등이 확대됐다는 인식이 늘어나면서 정부와 재정의 역할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통화정책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평가도 나온다. 주요국들이 수요부진 타개를 위해 금리를 경쟁적으로 낮추면서 일정한 성과를 거뒀으나 제로금리를 넘어 마이너스 금리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면서 추가적인 정책효과가 벽에 부딪히고 있다. 급변하는 국제정치나 변덕스러운 금융시장 등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높아져 간접경로를 통해 효과가 파급되는 통화정책보다 직접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재정정책이 더 유효한 수단으로 평가되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현재의 제로금리 상황에서 재정지출이 경기에 미치는 승수효과가 평소의 0.5보다 훨씬 높은 1.5에 달한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주요20개국(G20) 회의에서는 재정정책도 중요하며 각국이 더욱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쓰자는 데 의견을 같이해 정책 균형추가 얼추 맞춰지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도 재정정책의 역할에서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금리인하를 통한 경기부양적 통화정책은 자칫 가계부채를 늘릴 수 있는 데다,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자본유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더욱 중요한 배경은 차기 정부가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 상당 부분 재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공정성 강화와 일자리 확대라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5월의 대선 결과와 관계없이 경제민주화 이슈가 논의의 중심에 설 전망이다. 이에 따라 양극화 해소를 위한 복지나 공공서비스 공급,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과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투자 등이 우선적으로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어디에 얼마만큼의 재정을 투입하는가 하는 것이다. 먼저 개별 사업의 목표를 명확히 한 뒤 여기에 정책수단을 일치시켜야 할 것이다. 대규모 인프라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재정지출의 효과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실행됐을 가능성이 큰 투자가 종종 눈에 띈다. 공항철도는 막대한 적자가 이어지고 있고 출퇴근길 지하철 9호선은 미어터진다. 4대강 사업의 효과에 대해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통화정책과 달리 재정정책은 되돌리기가 어렵고 자칫 비효율성을 확대할 수도 있기 때문에 철저한 사전검토와 사후관리를 통해 정책효과를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책연구소의 독립성 강화도 필요하다. 국책연구소가 정부 부처의 입장을 대변하는 데 그친다면 객관적인 정책분석과 사후 검증이 어려울 것이다. 외부전문가에 대한 검증도 필요하다. 해당 전문가가 추후에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끈질기게 추적해 사실상 정치인이 아닌, 진짜 전문가를 가려내는 것은 언론의 몫이다.

아울러 새로운 정책을 시행할 때에는 먼저 소규모로 실험도 하고 정책효과를 검증한 다음에 점차 사업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검증되지 않은 사업을 대규모로 시작한다면 국가부채 확대 논란이 일 가능성이 있고, 복지와 관련된 정책의 경우 자칫 퍼주기 논란이 확산되며 초기부터 난관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업에 대한 철저한 효과 분석과 신중한 접근이야말로 재정정책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신뢰를 키워 결과적으로 사업의 성공확률을 높이는 길이 될 것이다.

신민영 <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