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의 논점과 관점] 민속경제학 전성시대
경제학이 참 저렴해졌다. 대선 캠프마다 발에 차이는 게 경제학자다. 정치를 멀리하면 은근히 ‘무능한 교수’ 취급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경제학자 수백명이 달라붙어 짰다는 공약들이 대부분 경제 망치기 경쟁이다. 차라리 공약(空約)이면 싶다.

요즘 대선 국면에서 각광받는 경제학 분야가 이름도 생소한 ‘민속경제학(folk economics)’인 듯하다. 민속경제학이란 경제학을 배우지 않은 대중의 직관적인 경제 통념을 가리킨다. 세상은 ‘제로섬’이고, ‘남의 행복은 나의 불행’이며, ‘경쟁하고 개방하면 망한다’는 부류의 사고방식이다. 폴 루빈 미국 에모리대 교수가 2003년 이름 붙였다.

‘경제는 제로섬’이란 착각 팽배

루빈 교수는 민속경제학이 수만년간 수렵채집 생활에서 인류 DNA에 각인된 휴리스틱(어림셈법)의 산물로 본다. 제로섬의 석기 원시사회에선 누군가의 소유를 다른 이들의 손실로 여겼다. 생산보다 분배, 개인보다 집단을 선호하고 부(富), 이윤, 경쟁, 개방을 혐오하게 된 연유다. 일부다처제 아래 처를 여럿 거느린 남성이 유전자까지 독차지하니 ‘부자·권력자=악’이란 반감도 생겨났다.

반면 시장경제는 민속경제학 통념에 반하는 특징을 두루 지녔다. 이기심, 자유로운 소유, 치열한 경쟁, 낯선 타인과의 거래 등이 각자는 물론 전체에도 이익이 된다는 사실은 직관으론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시장경제는 선천적 지식(본능)이 아니라 후천적 학습(경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수학을 모르고 태어난 것처럼 누구나 민속경제학자로 태어난다”(미제스연구소)는 비유가 적절하다.

미국에도 민속경제학의 착각과 오류가 흔한 모양이다. 가격이 뛰면 부족 사태가 난다고 호들갑떠는 언론, 담합조사 으름장을 놓는 정부당국, 법으로 규제하겠다는 정치인…. 수입(무역적자)이 미국인을 가난하게 만든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민속경제학자란 비판을 받는다. 생활 수준은 수출이 아니라 얼마나 수입을 잘 했느냐에 달린 게 경제학의 진실이다.

‘유리창 깨면 경제 살아난다?’

민속경제학이 만개한 곳이 한국 정치판이다. ‘기름값이 묘하다’는 MB의 한마디로 벌인 해프닝, 노무현 정부 시절 강남 집값을 잡으려다 폭등을 초래한 것 등이 그런 사례다. 정치인이 가격에 무지한 것은 200년 전 연암 박지원이 쌀 폭리를 처벌하려는 정조를 말리던 시절과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이제 대선이 42일 앞이다. 검증할 시간도 없는데 소위 유력 주자들이 내놓는 경제공약마다 민속경제학 원론을 보는 것 같다. 하나같이 대기업을 때려야 중소기업이 살고, 정부가 채용을 늘리고 근로시간만 줄이면 일자리 수십만개가 쏟아지며, 면세점·복합쇼핑몰까지 닫아야 전통시장이 산다는 식이다. 심지어 호텔을 예약했다 취소해도 돈이 돌아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마법의 도식’까지 등장했다. 유리창을 깨야 유리 소비가 늘어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궤변과 뭐가 다른가.

경제는 제로섬도, 고정된 스냅사진도 아니다. 상호작용하고 전략을 바꾸는 변화무쌍한 복잡계요,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다. 한데 특정 정지 장면만 보고 온갖 반시장의 칼날을 들이대려 한다. 이런 민속경제학은 정부를 ‘강한 결속력을 가진 공동체적 힘’으로 여기는 ‘민중의 로맨스(people’s romance)’ 속에서 독버섯처럼 퍼져간다. 하지만 경제가 잘 돌아가던 시절은 역설적으로 대통령이 경제를 몰랐을 때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