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깨우는 한시 (29)] 도화유수요연거(桃花流水然去)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도연명(365~427)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비롯된 중국적 유토피아는 후난(湖南)성의 무릉도원(武陵桃源)이다. 진대(秦代)의 전란을 피해 온 사람들이 몇백년이라는 시간조차 잊은 채 그대로 살고 있는 만수동(萬壽洞)으로 복사꽃이 만발한 신선세계였다고 묘사한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 관우 장비가 의형제를 맺고서 좋은 세상을 만들자고 맹세한 도원결의(桃園結義)의 현장도 복사꽃이 가득 핀 동산이다. 어쨌거나 이상향(理想鄕)의 기본 무대를 복사꽃 핀 곳으로 상정하던 시절이었다.

이태백(701~762)은 이를 배경으로 ‘산중문답(山中問答)’이란 시를 썼다. 흐르는 계곡물에 복사꽃이 가득 떠내려오는 무릉도원을 빌려와 자기가 머무는 자리를 별천지(別有天地)라고 불렀다. 인간세계라고 할 수 없는(非人間), 즉 신선세계라는 것이다. 하긴 별천지란 별것 아니다. 바로 꽃천지다.

경남 합천 가야산 남쪽 계곡은 봄날 떨어진 진달래 꽃잎이 붉게 흘러 홍류동(紅流洞)이라고 칭한다. 또 만수동(萬壽洞)이라고 불렀다. 불로(不老)의 신선을 꿈꾸던 은자들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심심풀이 삼아 십리계곡을 열아홉 구역으로 나누고 명소마다 운치 있는 이름표까지 달아 놓았다. 그런데 진입부의 1, 2, 3번을 모두 무릉도원과 관련된 명칭을 부여한 것이다.

제1경은 멱도원(覓桃源)이다. 무릉도원이 시작되는 자리다. 제2경 축화천(逐花川)이 바로 나타난다. 조선의 김종직(1431~1492)은 ‘떨어진 붉은 꽃잎 끝없이 물결 따라 흘러오네(落紅無數逐波來)’라고 노래했다. 제3경은 무릉교(武陵橋)다. 이 다리에서 서산대사(1502~1604)는 ‘꽃잎이 날리니 계곡 양편에는 봄이 가득하고… 태반이 신선이구나(花飛兩岸春…太半是仙人)’라고 읊었다. 그렇다면 입구가 바로 무릉계곡 전체와 다름없으니 더 이상 들어갈 필요조차 없다는 말이 된다. 하긴 이 봄날, 꽃피는 곳이라면 어딘들 무릉도원이 아니랴.

원철 < 스님(조계종 포교연구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