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탄핵해야 할 것은 관치경제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13가지 탄핵소추 사유에 헌법재판소는 다른 소추 사유들은 이유 없거나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기각하고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했을 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죄를 물어 파면을 결정했다.

기업의 재산권과 경영의 자유를 침해하는 수단으로 행해진 이권 개입은 공정한 공무 수행으로 볼 수 없는 행위로 헌법, 국가공무원법, 공직자윤리법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결국 자유시장경제를 이루는 근간인 사유재산권 및 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 헌법 위반이고 이를 행하는 수단적 행위는 법률 위반이라는 것이다. 이 판결문대로라면 헌재는 기존의 해석보다 엄격하게 자유시장경제를 헌법적 가치로 정의하고 수호하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통령 탄핵 판결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농림축산식품부가 치킨전문점 BBQ 등 민간 기업의 치킨 가격 인상 움직임에 대해 “부당이익” “세무조사” 운운하며 공개적으로 압박하고 차관은 업계 최고경영자(CEO)들을 불러모아 “치킨 가격을 올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일이 일어났다. 민간기업이 상품 가격을 올리고 내리는 데 정부에 이유를 설명할 의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정부가 세무조사라는 강력한 수단을 동원해 민간기업의 가격 인상을 막겠다는 것은 권력 남용이 아니고 무엇일까.

가격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고 기업의 전략에 따라서도 올리고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치킨 사업은 정부의 인가 사업도 아니다. 그런데도 헌재가 보는 위헌적 행위가 정부에 의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 농식품부의 태도는 기업은 원가 인상 요인이 있을 때만 가격 인상을 해야 하고 정부는 그 이익이 적정한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읽힌다. 도대체 농식품부의 이런 행태와 탄핵당한 박 대통령의 사유재산권 및 경영의 자유 침해가 무엇이 다른가. 이러고도 한국이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나라이고 박 대통령 탄핵 사유가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개발독재시대의 관치 망령은 온갖 부처에 널려 있으며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소프트웨어(SW) 시장을 정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할당하겠다는 미래창조과학부의 ‘SW산업발전법’, 이동통신단말기와 통신서비스의 가격 및 판촉활동을 공무원들이 결정하고 할인 경쟁도 통제하는 미래부와 방송통신위원회의 ‘단말기유통법’, 소비자에게 가격 할인을 금한 문화체육관광부의 ‘도서정가정찰제’, 금융위원회의 영세업자 카드수수료 50% 인하 강제 등은 헌재가 대통령을 파면한 사유인 ‘기업의 재산권과 경영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가 정부 모든 부처에서 자행되고 있다는 증거들이다.

이렇듯 시장 교란과 왜곡, 경영의 자유 침해가 거의 모든 산업영역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가격 담합을 막고 시장 경쟁을 촉진해 소비자 후생을 증진해야 할 경제 검찰 공정거래위원회는 민간기업만 닦달할 뿐 다른 정부부처의 반(反)경쟁 행위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쥔 국가권력의 힘이 기업들이 정경유착의 유혹에 빠지는 근본 원인이다. 그러나 농식품부가 이번 치킨 가격 인상을 놓고 벌인 행태에서 보듯이 정부는 이 불행한 탄핵 사태를 통해서도 아무런 교훈도 배우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박 대통령이 자유시장경제의 헌법적 가치를 지키지 못해 탄핵됐다면 시대착오적인 관치경제 공무원들의 권력 남용과 이에 준하는 규제입법 또한 이번 기회에 탄핵돼야 한다. 그것이 경제를 살리는 일이며 헌재가 탄핵 판결을 통해 추상같이 선언한 헌법적 가치에 부합하는 것이다.

이병태 < KAIST 교수·경영학 컨슈머워치 공동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