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용 칼럼] 4차 산업혁명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잠재성장률의 둔화, 실업의 증가, 소득과 부의 격차 확대, 고령화 등으로 경제 상황이 좀체 개선될 기미가 없다. 내로라하는 싱크탱크나 정부조차 제대로 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경제발전은 어떻게 일어나는지 보다 근본적 질문을 던져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1883~1950)는 경제발전에는 혁신이 필요한데, 기업가들의 혁신 의지에 의해 기존 가치의 ‘창조적 파괴’가 일어날 때 비로소 장기적으로 경제발전이 가능하다고 그의 저서 《경제발전의 이론》에서 제시했다.

산업사를 보더라도 새로운 주력 산업은 과거의 주력 산업이 축적한 경험과 기술, 자본을 기반으로 태어나기를 반복하며 발전해 왔다.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개량으로 시작된 1차 산업혁명 이후 250여년의 역사를 보면 선진국들은 이런 어려움을 여러 차례 겪었으나 슘페터가 주장한 창조적 파괴를 통해 이를 극복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1, 2차 산업혁명은 에너지 기술의 혁신이었다. 1차 산업혁명은 최초의 기계 에너지(증기)를 발명해 철강산업과 방직산업을 발전시키고 철도산업을 일으켰다. 2차 산업혁명 역시 전기와 내연기관이라는 획기적인 에너지에 의해 일어났다. 전기산업은 전자산업을, 자동차산업은 석유화학산업을 파생시켰다. 도로망과 전기 송전망이 전 세계로 뻗어 나가면서 막대한 경제 성장이 이뤄졌다. 이처럼 산업혁명은 대규모의 사회 인프라 투자를 유발하고 많은 파생 산업을 발전시키면서 대량의 일자리를 만들어 냈다. 1, 2차 산업혁명기는 아날로그 기술에 아날로그적 사고가 지배하던 시대로, 기술과 경험의 축적 및 농경 사회적 근면함이 경쟁력이었다. 따라서 노동집약적 경공업이 주축이 됐고 산업 발전에 따라 고용도 동시에 늘어날 수 있었다.

상황의 변화는 3차 산업혁명 때부터다. 컴퓨터화, 자동화의 보편화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통신기술은 인류를 여태껏 경험해 보지 않은 정보지식사회로 이끌었다. 이때부터 경제성장에 비해 고용이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자동화와 컴퓨터화 때문이었다.

최근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을 보자. 그 핵심으로 꼽히는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은 사실 이미 상용화됐거나 되기 직전의 기술들이다.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3차 산업혁명의 원동력이었던 전자기술, 정보통신기술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때문에 4차 산업혁명이라기보다 3차 산업혁명의 연장선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물론 언젠가는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어떤 형태의 산업혁명이 되든 고용과 소득 격차 문제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변화의 근본 원인은 기술의 패러다임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었고 경쟁력도 근면함이 아니라 우수한 두뇌와 창의성, 아이디어로 바뀌었다는 데 있다. 산업도 노동집약에서 자본집약적으로 변해 단순 작업은 기계화되는 반면 전문지식과 기술을 요하는 직업이 증가할 것이다. 문제는 AI가 인류에게 상상하지 못한 혜택을 가져오겠지만 그 효과는 사회 전체에 고루 배분되지 않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해 국가적·사회적 차원의 전략을 짜고 대안을 찾는 일이 시급하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역사적 교훈이 하나 있다. 역사 발전의 원동력은 ‘도구 발명과 과학기술의 혁신’에 있지만, 고용 감소와 소득 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첨단이 아닌 재래 전통 산업 영역에서도 혁신이 나타나고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점이다.

세계적 명품이 곧 첨단산업 제품은 아니다. 재래 전통 상품이지만 부가가치가 더 많은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AI나 IoT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아이디어를 내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재래 전통 산업이나 농·축·수산업도 예외일 수 없다. AI와 빅데이터에 투자하고 인력을 키우는 일만큼이나 기술 혁신의 과실을 고루 나눠 가질 수 있도록 대안을 찾는 일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윤종용 < 전 삼성전자 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