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일자리가 '보텀 라인'
보텀라인(bottom line)은 ‘핵심적 결론’을 뜻하는데 회계에서는 주로 순이익을 지칭한다. 회계관습에 따라 산출된 순이익은 실제 현금흐름과 다른데 그 괴리 정도를 따져 이익의 질(質)을 평가한다.

건설업과 조선업 등 수주산업 회계는 진행률 추정치를 토대로 운영되기 때문에 이익의 질이 특히 낮다. 진행률로 순이익을 계상하더라도 완공 후 대금을 받는 조건이라면 자금은 부족하고 공사 수주가 막히면 더욱 어렵다. 조선회사 부실징후는 2013년부터 확연했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막대한 손실을 공표하고 수뇌부를 갈아치웠다. 그러나 대우조선은 2014년에도 순이익을 계상했고, 성과급과 배당금까지 지급했다. 영업활동 현금적자와 부채폭증이 확연한 재무제표를 내놓고도 돈 잔치를 벌인 것이다. 민간금융회사가 회수한 자금을 산업은행·수출입은행과 국민연금·우정사업본부가 대신 메웠다.

당시나 지금이나 대우조선의 최대주주는 산업은행이고 2대 주주는 금융위원회다. 최고경영층뿐만 아니라 감사위원까지 친정부 인사로 채웠다. 결산서 작성은 회사 임직원 책임이고 감사위원회가 내부감사를 통해 검증한 다음 회계법인 외부감사를 맡긴다. 감사위원은 회계 전문성을 발휘해 순이익뿐만 아니라 차입금 동향도 살펴 상여와 배당 집행을 감시해야 한다. 그러나 대우조선 감사위원 면면을 보면 그런 책임을 거론하기 민망할 정도로 비전문적이다. 경영권과 금융감독권을 지닌 1~2대 주주가 감사위원만 제대로 선임했어도 이런 비극은 막을 수 있었다.

회계법인에 대한 적절한 수준의 징계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회계조작을 직접 실행한 회사와 상법상 감독기관인 감사위원회는 놔두고 소속 공인회계사 중에서 극히 일부가 감사에 참여한 회계법인을 통째로 날리는 것은 가혹하다. 형사들이 조작해 검사가 대충 기소하고 법원이 속아 넘어가 유죄로 판결했다가 재심에서 뒤집힌 사건에 대해 경찰·검찰은 그냥 두고 담당 재판부를 해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회계업계의 글로벌 4대 법인 체제가 공고한데 한국에서 딜로이트가 퇴출당하면 원인 제공자인 대우조선의 국제적 신용도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엔론과 대우 사태에서도 회사가 넘어간 다음에 회계법인 존폐가 논의됐다. 회계법인 죽이기보다 대우조선 살리기가 보텀라인이다.

선거철마다 경제민주화를 띄우던 세력이 다시 어슬렁거린다. 대주주가 적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전횡한다고 몰아붙인다. 주인 없는 대기업의 성공은 한국에서는 신기루다. 국민 기업을 자칭했던 기아그룹 패망과 민영화된 공기업 파행이 증거다. 부채도 거의 없고 독보적 사업 영역이 뚜렷했던 포스코, KT와 KT&G는 민영화 이후 정치권력에 휘둘려 엉망이 됐다. 이들이 삼성전자만큼 성장했다면 한국 경제는 달라졌을 것이다. 김영삼 정부의 외환관리 실패로 초래된 구제금융 사태가 대기업 규제의 빌미가 됐다. 부채비율 200%를 비롯한 온갖 규제가 쏟아졌다. 초기에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내세웠지만 요즘은 한국 특수 상황이라며 국제적 전례가 없는 규제도 내놓는다. 규제에 대처해 자금을 비축하다 보니 투자는 위축됐고 강성노조 등쌀에 생산시설 해외 이전은 늘었다.

소액주주를 우려먹던 타이거펀드 소버린 뉴브리지캐피털 스틸파트너스 등 헤지펀드는 대박을 챙겨 떠났지만 아직도 많은 해외 기금이 삼성전자 등 우량 주식에 장기 투자하면서 경영을 맡기고 있다. 기업마다 첨예한 국제경쟁을 뚫고 나갈 구조조정이 다급한데 온갖 규제가 발목을 잡는다. 법률보다 깐깐한 정부의 집행규정도 많다. 규제입법을 쏟아낸 국회가 코가 꿰어 끌려다니는 대기업 총수를 소환해 공익재단 출연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 책임을 추궁한다. 불 질러 놓고 기독교도에 뒤집어씌우는 ‘네로의 수법’이다. 대기업 고용여력 탈진으로 엎친데 강성노조 기득권이 덮쳐 구직 전선의 청년들은 실신 상태다. 경제민주화가 만병통치약이라는 허상을 떨쳐내야 한다. ‘일자리가 보텀라인’이라는 기치를 분명히 내건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leemm@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