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경제지식의 무지가 불러올 '헬조선'
한국경제TV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5.1%가 기업에 대해 ‘나쁨’ 또는 ‘매우 나쁨’으로 응답했다고 한다. 특히 장래 기업에 취직하고 한국의 ‘지성인’이 될 대학생의 86.3%가 이런 반(反)기업적 응답을 했다는 것이다. 일개 여론조사지만 한국이 시장경제를 할 자격과 능력이 있는 나라인지 의심케 하는 자료다.

이 조사의 ‘기업의 이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란 질문에는 응답자의 50.2%가 ‘사회 환원’을, 35.6%는 ‘직원’을 꼽았다. ‘주주’는 9.5%에 그쳤다. 기업은 이윤을 낼 수도 있고 손실을 내고 망할 수도 있다. 그 위험은 모두 주주가 부담하는데 이윤이 날 때도 직원과 사회에 다 빼앗기면 누가 기업을 만들거나 투자하겠는가. 회사에 이윤을 하나도 저축할 수 없다면 기업이 어떻게 존속하겠는가. 특히 공무원의 60.5%가 ‘사회 환원’이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재산권 관념이 없는 공무원이 일하는 나라에서는 기업 규제가 곧 ‘정의’로 인정돼 기업을 질식시킬 수밖에 없다.

한국인의 반기업 풍조는 아마도 재벌을 질투하는 국민성에서 유래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단연 세계 최고의 상속세율을 가진 나라가 됐다. 최고 상속세율 65%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5%의 4배가 넘는다. 미국·유럽에서는 과도한 상속세가 재산 처분, 해외 도피 등을 유인해 국내 자본스톡과 기업가정신을 손상시키므로 경제와 일자리를 가장 해치는 정책이 된다는 인식 아래 상속세를 폐지하고 있다. 2015년 OECD 34개국 중 15개국에 상속세가 없으며, 미국은 상속세 폐지를 추진 중이다. 홍콩, 싱가포르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 러시아에도 상속세는 없다.

한국에서는 상속세를 내기 위해 기업주가 사업체나 기업 재산을 파는 사례, 가업 승계를 위해서 온갖 불법의 주식 승계, 기업과 자금 도피 등 경제범죄를 저지르다 감옥에 가는 비극적 상황이 수시로 벌어진다. 독일의 최고 상속세율은 40%지만 가업 승계 당시 임금 지급액의 700% 이상을 7년 내에 임금으로 지급하면 상속세 전액을 면제해준다. 우리나라는 극소수만 해당되도록 어려운 자격과 의무 조건을 붙여 상속재산의 40%를 과세공제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독일식 강소기업이나 백년가업의 융성을 바라고 있다. 참으로 염치없고 가망도 없는 일이다.

한국에는 대기업을 없애면 그 자리에 수많은 중소기업이 번성해 양극화 없는 이상적 국민경제가 탄생할 것으로 믿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과거 중화학공업화 시대 거대 기업을 육성한 주(主)이유는 자원이 없고 인구만 가득한 나라가 세계시장에서 생존하려면 중소 수출기업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세계시장에서 경쟁과 혁신을 인도할 힘을 가진 글로벌 기업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세계적 기업이 된 삼성전자는 2013년 총매출 158조원의 89%를 수출로 벌어들였고, 현대·기아자동차의 해외 매출은 64%를 차지했다. 이런 대기업들의 글로벌 성과에 무수한 2차, 3차 협력기업의 생명줄이 연결돼 있음은 더 말할 나위 없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등이 ‘수주절벽’을 만나자 울산과 거제의 수많은 선박 하청업체가 폐업 위기로 몰리고 지역 상가의 폐점이 줄을 잇고 아파트가 텅 비어가는 비극을 보지 못하는가.

과거 제국주의 시대와 달리 21세기는 기업 경쟁의 시대다. 따라서 대기업의 다소가 강대국의 척도가 된다. 2016년 포천의 ‘글로벌 500’에는 미국 134개, 중국 103개, 한국 15개 기업이 선정됐다. 중국은 1997년 3개에서 103개로 대폭 늘어난 반면 한국은 1997년 13개, 2013년 17개로 증가한 뒤 작년 15개로 다시 줄었다. 불행히도 오늘날 한국 청년들은 좌파적 교육·문화·연예·미디어의 홍수에 빠져 이런 상식적 사실조차 자각할 기회를 잃고 있다. 한국 청년들의 진정한 ‘헬조선’이란 바로 이런 몽매한 사회 현실과 기업이 사라지는 미래사회라 할 것이다.

김영봉 < 중앙대 명예교수·경제학 kimyb5492@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