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원가후려치기에 대한 이해
시장경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분의 합이 전체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각자는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지만 공익을 증진시킨다는 애덤 스미스의 저녁식사 사례 말이다. 전지전능한 중앙 정부가 계획하거나 판단하지 않아도 마치 누군가(神)의 거대한 숨은 계획이 있는 것처럼 사회는 저절로 돌아간다는 것이 시장경제 이해의 핵심이다. 시장의 무정부성이라는 것도 이를 일컫는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말도 그렇다. 선한 동기와 그것의 나쁜 결과를 이해하지 못하면 시장경제를 이해하지 못한다. ‘선의’라는 조건만 중시하는 것은 헤겔 이전적이며, 개인과 전체를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유교적 사고다. 개인의 덕목인 효(孝)와 사회덕목인 충(忠)은 결코 동일할 수 없다.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시장 거래는 강자가 약자를 약탈하는 것이라고 본다. 갑을관계가 시장을 지배할 뿐이어서 국가가 개입해 균형을 맞추지 않으면 시장은 구조적 악(惡)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어떤 불의한 사례’를 근거로 들지만 궁극적으로는 시장 전체를 국가가 지도하고 관리해야 하는 사회주의에 호소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그럴듯한 오류의 하나가 바로 원가 후려치기다. 원사업자는 강자이며 수급사업자는 약자이므로 정부가 나서서 수급사업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다.

하도급법은 제11조에서 아예 원사업자의 하도급대금 감액금지를 정하고 있을 정도다. 이 조항에 따르면 원사업자가 계약 금액을 감액하려면 ‘정당한 사유’를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하도급법은 친절하게도 그 구체적 사유를 예시하고 있다. 이 예시에는 금액 산정 자료에 중대한 오류와 착오를 발견해 이를 정당하게 수정하고 그 금액을 감액하는 경우, 불량품을 납품하거나 기일을 어겨 납품하는 등 수급사업자의 귀책사유로 하도급대금을 감액하는 경우 등이다. 계약 쌍방의 분쟁은 법원에서 다투면 그만이지만 하도급법은 친절하게도 정부가 어버이처럼 감액조건 따위를 자세히 정해놓고 있다. 장비를 대여했을 때의 책임 문제 따위도 여기에 포함된다.

하도급법 시행령은 다시 감액 기준도 열거하고 있다. 하도급법 시행령 제9조 제2항은 중소기업협동조합으로 하여금 납품단가 조정에 나서도록 하고 그 조건도 상세히 정해놓았다. 계약금액의 10%에 해당하는 원재료의 가격이 계약 체결일 이후 10% 이상 상승한 경우, 원재료 가격 상승 등 변동금액이 기타 금액의 3% 이상인 경우 납품금액을 인상해 주라는 것이다.

원가란 과연 무엇인가. ‘정의로운 원가’는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물론 그런 개념은 성립할 수 없다. 원가는 사업자의 계산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그러면 가격이란 무엇인가. 원가에 소위 ‘적정 이윤’을 더한 것을 가격이라고 생각한다면 시장경제에 대해서는 백치다. 원가와 상관없이 가격이 비쌀수록 실은 좋은 물건이며, 소비자들이 원하는 상품이다. 누가 가격을 결정하는가. 공급자? 아니다. 시장이 결정한다. 독점기업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조차 시장가격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다면 소위 정의로운 납품가격은 어떻게 정해져야 하는가. 당연히 치열한 경쟁을 통해 정해진다. 이 과정을 통해서 시장은 정의를 실현하고 혁신을 만들어 내고 사회를 진보시킨다.

후려치는 원가를 견뎌내지 못하면 당연히 경쟁에서 탈락한다. 지금 현대차와 삼성전자의 경쟁력, 그리고 수천개 납품업체들의 경쟁력은 무자비한 가격 하락을 견뎌내는 과정에서 세계적 수준을 갖추었다. 납품단가를 후려치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경쟁력은 결코 생겨나지 못했다. 현대차와 삼성전자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납품업체들은 원사업자로부터 납품권을 따내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갈등하는 것 자체가 혁신과 창의의 과정이다. 그 과정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대한민국 국회의 경제관이다. 시장경쟁이야말로 사회를 진보시키고 동시에 노력한 업자를 보상하는 정의로운 분배 시스템이다. 신은 그런 가혹한 경쟁을 통해 문명을 만들어 낸다.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