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느끼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음미(appreciation)’란 아마도 가치를 알아주는 것 또는 가치를 알아주는 능력, 느끼는 능력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서 얼마만큼의 가치를 창출할까. 아무리 훌륭한 인간이라도 자신이 창출하는 가치의 양보다는 타인이 창출한 가치를 누리고 향유하는 양이 훨씬 많을 것이다. 즉, 가치 창출의 양보다는 가치 누림의 양이 더 많다.

그렇다면 인간 개인의 행복 조건 또는 인간 능력의 조건은 가치 창출 능력에 있기보다는 가치 누림의 능력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음미는 이렇게 인간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의 가치를 누리는 능력, 가치를 알아줄 수 있는 능력, 감상할 수 있는 능력, 감사할 줄 아는 능력을 가리킨다.

어떤 인간을 교육할 때 그 인간이 가치를 창출하는 능력만을 갖도록 교육하는 것은 그 인간을 도구화하는 것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어떤 인간을 인간답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는 그 인간이 남을 위해 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을 갖도록 교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이 창출한 가치를 음미하는 능력을 갖도록 교육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것이 한 인간의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있다.

성장하고 교육받는 동안 그 음미의 능력을 갖추기보다는 남을 위해 가치를 창출하는 능력만을 교육받았나보다 싶은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는 습관을 가지게 돼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나 베짱이처럼 한여름 나뭇잎에 앉아 흐르는 물소리를 즐기고 새들의 지저귐을 음미하고 꽃향기를 맡으며 흥겹게 노래 부르는 음미의 능력과 필요를 교육받지 못한 것이다.

이런 사람은 친구가 주변에 있음을 잘 감사하지 못할 수 있고 배우자에게도 잘 감사하지 못할 수 있으며 직장도, 수많은 문화예술도, 자연에도 잘 감사하지 못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이런 사람은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가치 창출의 능력을 키우는 것과 음미 능력을 키우는 것 중 무엇이 더 힘들까. 가치 창출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 더 어려워 보일 수 있지만 음미 능력을 키우는 것도 만만치 않게 어렵다. 예를 들어 뽕짝이나 K팝,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어깨를 들썩이는 일은 특별한 교육이 필요 없지만 구스타프 말러 이후의 현대음악을 감상하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이런 예는 미술, 자연의 동식물, 하늘, 향기, 땅, 친구, 이성, 스승, 제자, 기업, 직업, 보석, 문학, 음식, 와인, 커피 등 세상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에 해당한다. 이 모든 것을 음미하려면 특별한 교육이나 특별한 노력, 특별한 재능, 특별한 감수성이 필요하다. 또 이론적으로 음미의 주체는 음미의 대상보다 더 많은 또는 정교한 차원을 가져야만 적절한 음미가 가능하다. 1차원을 가진 개체가 3차원의 개체를 평가하면 1차원적 평가밖에 나오지 않듯이 모든 음미는 대상보다 더 포괄적 관점과 정교한 구분자가 있어야 진짜 음미의 목적을 달성한다. 물론 때론 음미의 그 순간, 음미하는 주체의 관점이 넓어지고 구분자가 정교해지는 일종의 지평 넓힘이 일어난다. 음미의 능력은 새로운 음미에 도전함에 따라 깊고 넓어지는 것이다.

세상사의 모든 일이 음미의 연속이다. 매 순간 음미하는 삶은 행복하다. 거리에서 만난 사람의 작은 친절에 감사하고 친구의 호의에 감사하며 먹는 음식에 고마움을 느끼는, 이른바 성경구절에 나오는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이 과연 진리다.

4차 산업혁명에서는 인간이 노동에서 해방될지 모른다고 한다. 노동에서 해방된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음미 능력을 키우고 그 시간에 더 나은 개인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문화적·사회적 기풍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모든 사람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살 수 있도록 하는 생애주기 전반에 걸친 자연, 문화, 예술, 학문의 음미 능력 교육과 이를 통한 새로운 직업 교육과 이에 기반한 경제 체제와 복지 시스템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이경전 < 경희대 교수·경영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