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철인아톰과 겨울연가
비행기 태워 준다는 말에 꾀여(?) 일본으로 건너간 1963년. 친구가 돼준 것은 TV였다. 어린 시절 만화를 끼고 살다시피 한 만큼 꽂힌 프로그램도 TV 애니메이션이었다. 데즈카 오사무(手塚治)의 ‘철인아톰’(우주소년 아톰, 이후 괄호는 한국명)에 매료됐다. 1963년에 로봇이 나오는 SF 물이라니. 그 뒤로 ‘철인28호’(1963), ‘정글대제’(1965, 밀림의 왕자 레오), ‘마법사 새리’(1966, 요술공주 새리), ‘리본의 기사’(1967, 사파이어 왕자), ‘황금박쥐’(1967), ‘요괴인간 벰’(1968), ‘사이보그 009’(1968), ‘타이거마스크’(1969), ‘내일의 조’(1970, 도전자 허리케인) 등을 즐겨 봤다.

옛일을 굳이 소개하는 이유는 1970년대에 이 프로그램들을 한국에서 고스란히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다. 1960~1980년대에 선보인 TV 프로그램의 포맷, 레슬링, 만화·잡지·소설 등 출판물, 많은 것이 일본산 번안물이었다. 당시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오는 일방통행의 흐름이었다. 상품, 산업, 자본재, 학문 등 거의 모든 방면에서 일본은 원산 혹은 경유지가 됐고, 어떤 때는 왜색이라고 경계하다가도 보통은 ‘일제’를 더 쳐줬다.

1980년대 후반에 한국이 민주화와 여행자유화, 중국 수교 등으로 나아가면서 양상이 바뀌었다. 외국과의 문호도 다변화되고, 우리 문화도 뻔하지 않은 수준으로 높아졌다. 1998년부터는 일본에 대중문화를 개방하기 시작했는데 위협적일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갔다. 오히려 2003년 일본에서 ‘겨울연가’를 시작으로 인식이 크게 바뀌고, K팝에 의한 한류 바람이 대대적으로 불었다.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한국의 수용성도 커졌다. 구사나기 쓰요시(초난강), 후에키 유코(유민), 후지타 사유리(사유리), 나메카와 야스오(강남), 구니무라 준, 오타니 료헤이 등 상당수 일본인이 한국의 방송, 연예, 영화, 광고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은 360만명이 봤다.

지난 주말 한일의원연맹 제40차 총회 참석차 일본에 다녀왔다. 양국 간에는 아직 영토와 역사 문제 등 쉽지 않은 난제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봄과 겨울을 오가는 굴곡도 머지않아 끝이 보이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양국 간 문화 교류는 이미 일방성에서 벗어나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단계로 이행하고 있음을 이번 총회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한·일 양국이 더 이상 ‘가깝고도 먼 나라’가 아니라 ‘다르고도 가까운 나라’로 성큼 다가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조훈현 < 새누리당 국회의원 chohoonhyun@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