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국경 장벽
국경 장벽이라면 중국 만리장성부터 떠오른다. 2200여년 전부터 쌓기 시작한 인류 최대의 토목 공사. 주요 성벽 길이 2700㎞에 지선까지 합쳐 6000㎞에 이르니 실제론 1만5000리나 된다. 이보다 규모는 작지만 고구려가 7세기 당나라 침입에 맞서 요동 지방에 쌓은 천리장성과 고려가 11세기 여진을 막기 위해 쌓은 천리장성(고려장성)도 있다.

지금은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뺏긴 뒤 러시아 국경에 약 2000㎞의 장벽을 쌓는 중이다. 난민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유럽 국가들도 앞다퉈 방어벽을 구축하고 있다. 헝가리는 세르비아 국경에 175㎞의 철조망을 세우고 이중방벽을 설치했다. 불가리아와 그리스도 터키 국경에 담장을 쌓았고 영국과 프랑스 역시 ‘칼레 장벽’ 건설에 나섰다.

인도-파키스탄 국경 장벽은 약 1500㎞에 걸쳐 있다. 인도가 테러범을 막기 위해 처음 쌓기 시작했는데 철책 사이로 지뢰까지 묻었다. 양측이 핵보유국이기 때문에 한반도의 휴전선과 맞먹는 위험지역이다. 이란-파키스탄, 이라크-쿠웨이트 장벽도 긴장감이 넘치는 곳이다.

지중해 동부 섬나라 키프로스의 남북을 가르는 ‘그린 라인’도 비슷하다. 터키계와 그리스계 사이의 분쟁을 막기 위한 철조망이 180㎞에 걸쳐 있다. 유엔 평화유지군이 관할하는 완충지대는 한반도 비무장지대와 함께 환경이 잘 보전된 지역으로 유명하다. 팔레스타인 웨스트뱅크와 이스라엘 지역을 구분하는 높이 8m의 ‘웨스트뱅크 장벽’과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 평화선’도 물리적 충돌방지를 위한 장벽이다.

불법 이민자들을 막으려는 장벽은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스페인령 세우타, 멜리야에 세워진 높이 6m, 길이 20여㎞의 철책이다. 아프리카 부국인 보츠와나와 빈국 짐바브웨 사이의 ‘위생장벽’은 가축 전염병을 막는 게 명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월경방지용이다. 석유부국 사우디아라비아는 9000㎞에 이르는 사막 위에 30억달러를 들여 ‘오일 펜스’를 지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공약인 ‘멕시코 장벽’ 설치에 공식 서명했다. 불법 이민을 막으면서 세관 업무와 국경 경비 등 5000여명의 일자리도 만들겠다는 것이다. 공사비 100억달러(약 12조원)는 멕시코에 분담시키겠다고 한다. 그런데 장벽 건설의 최대 수혜자는 미국에 진출한 멕시코 시멘트 회사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은 멕시코 수출품의 80%를 사들이고 멕시코는 미국 물건을 두 번째로 많이 사는 나라다. 그런 점에서 보면 장벽은 장벽이고 교역은 교역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