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ICT 표준전문가' 정부가 적극 육성해야
2017년 기술·경제 분야의 큰 화두는 제4차 산업혁명의 진전이 될 것이다. 지난 20세기 산업화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 전환한 우리 사회는 또다시 지능정보기술을 기반으로 지능이 혁신되고, 융합이 가속화되는 초연결 사회를 맞게 됐다.

초연결 사회에서 시장과 시장을, 산업과 산업을 연결하며 인간과 세상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ICT(정보통신기술) 표준’이다. 오래전부터 일상생활이 된 유무선 전화, TV방송과 인터넷 등에는 수많은 ICT 기술표준이 포함돼 있고, 기술표준을 채택하지 않은 제품은 음성이나 영상, 정보를 제대로 전달해 줄 수 없기 때문에 소통의 수단으로서 쓸모없는 물건이 되고 만다.

일반 제품의 표준은 기술의 공유와 비용 절감에 그 목적을 두는 경우가 많지만 ICT 표준은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는 기준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미리 표준이 될 기술을 개발해 시장을 선점한 기업은 향후 관련 시장을 선점해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승자 독식’을 향유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거나 한발 늦은 경우에는 시장에서 사라진다.

노키아는 GSM(global system for mobile communication) 표준을 선점해 2세대 이동통신시장에서 승자독식의 이익을 누렸지만, 3세대 이동통신시장에서 표준화에 늦어 2014년 결국 시장에서 사라졌다. 이와 달리 국내 기업인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이동통신 분야의 기술개발과 표준화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4세대 이동통신인 LTE 표준특허 1, 2위를 차지하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처럼 ICT 표준화는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신규시장을 창출하고 그 시장을 선점함으로써 기업은 물론 국가의 미래경쟁력을 좌우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수출의 약 30%를 ICT산업에 의존하고 있어 ICT 표준화는 더욱 중요하다.

최근 세계 최고의 글로벌 기업들은 신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혁신적인 신제품을 개발하고 촌각을 다퉈 글로벌 ICT 표준화에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표준제정까지 장기간이 소요되는 국가주도 국제전기통신연합(ITU) 등 전통적인 공식표준화기구 중심의 활동에서 벗어나, 기업 스스로가 주도하는 포럼이나 컨소시엄 등 사실표준화조직을 결성해 사실상의 표준을 선점하고 사후에 공식표준화기구를 통해 국제표준화를 추진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그동안 한국은 제한된 기술과 인력을 활용해 효율적으로 추격하기 위해 전략 분야를 선정해 공식표준화기구의 위상 성장에 주력했다. 하지만 ICT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고 시장과 표준화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포럼, 컨소시엄에 대한 참여와 대응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또한 이런 환경변화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 이동통신 분야의 ‘3GPP’와 사물인터넷 분야의 ‘oneM2M’ 등 사실표준화기구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등 글로벌 표준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글로벌 ICT 표준화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전략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무엇보다도 시장과 기술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표준화 속도가 빨라지고 기구가 다양해지는 글로벌 포럼이나 컨소시엄 등의 의사결정 과정에 국내 전문가의 참여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 표준 무대에서 우리 산업계의 이익을 대변하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표준 전문가의 대대적인 발굴 및 육성이 전제돼야 한다. 또 표준화에 직접 참여하는 데 한계가 있는 중소기업의 우수기술이 국제표준에 반영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중소기업에 표준화 동향정보를 제공하는 국내 대응 포럼을 활성화해야 한다. 산업지원 정책은 시장의 흐름 및 방향과 속도를 같이할 때 그 효과가 배가된다. ICT 표준화 지원 또한 예외일 수 없다.

박재문 <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