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깨우는 한시 (17)] 인동성망래해국(人動星芒來海國)  마생용종입천한(馬生龍種入天閑)
권근(權近·1352~1409)의 본관은 안동이며 호는 양촌(陽村)이다. 사서삼경에 밝고 문장이 뛰어난 것이 고려와 조선 두 왕조에 걸쳐 활약할 수 있는 바탕이었다. 조선 개국 초기에 외교문서로 인한 갈등이 발생했다. 구관이 명관이다. 그가 문제 해결을 위해 압록강을 건넜다. 명(明)나라 태조(太祖)는 ‘간을 보기 위해’ 한반도의 뛰어난 명승지에 대한 시를 지으라고 명했다. 그때 주종(主從)이라는 외교적 수식어를 빠뜨리지 않고 쓴 24수 가운데 ‘탐라(耽羅·제주)’라는 작품도 포함돼 있다.

이런저런 일로 12월에 제주도를 두 번씩이나 다녀왔다. 섬에서 태어나 섬으로 출가한 토박이 스님이 뭍에서 온 도반 몇 명을 위해 ‘가장 제주도다운 곳’이라며 안내를 자청했다. ‘따라비 오름’은 세 개의 산언덕(오름)이 모여 있는 곳이다. 대부분(300여개)의 오름이 외오름이며 쌍오름도 흔하지 않지만 세오름은 정말 귀하다는 말을 두어 번 반복했다. 외오름은 혼족(1인)에게 어울릴 것 같고 쌍오름은 남녀 두 사람이 함께한다면 제격일 것이다. 세오름은 우리처럼 3명 이상 ‘떼로’ 찾아와야 할 것 같다.

입구의 말굽처럼 생긴 지형은 말(馬) 키우기에 최적지라고 했다. 넓은 초지에서 뛰놀던 말을 저녁이면 한곳으로 쉽게 모을 수 있는 천혜의 지형 덕분이다. 전쟁과 운송을 위한 필수물자인 말을 중앙정부에 조달하는 일은 제주 목사의 중요한 소임이었다.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고 했지만 훌륭한 말은 탐라에서 한양으로 가기 마련이다. 오름 중간에서 낮은 현무암 담장이 둘러쳐진 무덤을 만났다. 키 작은 동자석 한 쌍이 무인석처럼 서 있고, 곁에는 봉분보다 높은 비석까지 갖춘 거로 봐서 ‘준마를 임금(天子)에게 보냈던’ 지방관리가 누워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했다. 이 자리에서 바라보는 억새와 능선의 조화로운 아름다움은 ‘오름의 여왕’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다.

어느새 동짓달 짧은 해가 기울었다. ‘사람이 별빛을 움직여 별이 바다에서 온다’는 감성적인 시어가 어울리는 자리에 함께 앉았지만 각각 혼자서 저녁 바다를 보며 저물어가는 한 해의 아쉬움을 달랜다.

원철 < 스님(조계종 포교연구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