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한진해운 법인장의 마지막 메시지
“숨 좀 돌리면 봅시다”라고 만남을 피하던 한진해운 미주법인장으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다. “이제 다 끝났고, 조용히 쉬고 싶습니다. 특별히 뵐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진해운 법인장으로서 보낸 마지막 메시지였다.

그는 미국 법원의 스테이오더(압류금지 결정)를 받은 선박 가압류를 풀고, 뉴욕항에 지체된 화물을 처리하느라 하루도 쉬지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 컨테이너를 처리하고 텅 빈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진해운 미주법인은 이달 말로 문을 닫는다. 현지 채용 직원 200명에게는 지난달 해고 통보가 갔다. 회사가 없어지니 부당해고라는 이의 제기조차 할 수 없다. 본사에서 나온 직원들은 귀국하거나 현지에서 다른 회사를 찾아야 하는 선택만 남았다. 베테랑 부장급 한 명은 경쟁사로 들어간다는 소식이 들렸다.

지난달 6일 열린 코참(KOCHAM·미한국상공회의소) 송년회에는 참석자가 확 줄었다. 행사 공간도 지난해보다 3분의 1가량 줄었다. 직전에 코참 회장을 맡았던 D사의 A사장은 나오지 않았다. S사 임직원들도 2년째 참석하지 못했다. 본사에서 대외활동 참가를 자제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했다. B은행은 본사 감사로 10여명의 직원이 모두 불참했다.

법인장들이 연말에 직원들을 부부동반으로 초청해 저녁식사를 하면서 1년간 격무를 위로하는 자리마저 마련하지 않기로 했다는 야박한 소리가 들린다. 주재원 남편을 둔 부인들은 “미장원에서 머리 만질 일이 없어져 다행”이라고 말하지만 달라진 남편의 회사 사정에 “혹시”하며 긴장하는 분위기다.

내년에는 포스코 미주법인이 뉴욕을 떠나 애틀랜타로 둥지를 옮긴다. 열악해지고 치열해진 영업환경 때문이다. 본사의 승진 최소화 방침에 따라 현지에서 옷을 벗는 인력들의 소식도 들린다. 본사 인사팀에서는 “아무래도 본사 직원들을 더 챙겨줘야 하니, 실적은 좋지만…”이라며 말을 흐리는 모양이다. 혹시 오해할까봐 주재원들에게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덕담을 건네기가 조심스러워진다. 내년에는 달라질까. 한국과 한국 기업들이 처한 상황이 어느 때보다 어두운 연말이다.

이심기 뉴욕 특파원 sglee@hankyung.com